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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성식 시인(예산) / 오징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1.

조성식 시인(예산) / 오징어

 

 

먹물이 마른지 오래

바다에 대한 기억은 이제 없다

사지를 틀켜쥐던 대나무도 몸 안의

뼈로 박히고 간간히 풍겨오던

소금기 절은 갯내도

몸 밖에서 하얗게 분처럼 말랐다

가스 불에 몸을 던져도

뜨거운 쪽으로 기꺼이 몸을 말아

나를 태우는 것까지 둥글게 감쌀 줄 아는

아름다운 죽음을 알았다

비 젖은 속을 소주로 달래는

노동자의 입안에서

뱃머리를 닮은 두툼한 사람의 손에서 찢겨

손에서 손으로 건네는 안주가 되어

잇몸 약한 사람의 어금니가 되어

곱씹으면 씹을 수록 단내 나는

죽음을 알았다

 

 


 

 

조성식 시인(예산) / 외발 밀차

 

 

길을 간다

논두렁에서 밭고랑까지

길을 만들어 가는 외 발 밀차

처음 끌어본 사람은

힘으로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할머니가 한 짐 끌고 간다

양발로 걷기 힘든 세상의 모서리를

지팡이를 짚듯이 힘차게 밀고 가는 것

마늘밭 고랑이나 감자 밭 사이를

한치도 흐트리지 않고 신나게 달린다

딛는 곳 마다 길 아닌 땅

가고나면 새로운 길을 내는 저 당당한 외 발

수평이 흔들릴 때 밀차를 끌어라

세상의 무게를 골고루 나누는 일이

한 몸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란 걸

작대기 같은 버팀목으로 가르쳐 주는

치마 속 버선같은

작은 발

 

 


 

조성식 시인(예산)

1967년 충남 예산 출생. 순천향대 국문학과 졸업. 1998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0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비무장지대 동인. 현 예산농협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