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식 시인(예산) / 오징어
먹물이 마른지 오래 바다에 대한 기억은 이제 없다 사지를 틀켜쥐던 대나무도 몸 안의 뼈로 박히고 간간히 풍겨오던 소금기 절은 갯내도 몸 밖에서 하얗게 분처럼 말랐다 가스 불에 몸을 던져도 뜨거운 쪽으로 기꺼이 몸을 말아 나를 태우는 것까지 둥글게 감쌀 줄 아는 아름다운 죽음을 알았다 비 젖은 속을 소주로 달래는 노동자의 입안에서 뱃머리를 닮은 두툼한 사람의 손에서 찢겨 손에서 손으로 건네는 안주가 되어 잇몸 약한 사람의 어금니가 되어 곱씹으면 씹을 수록 단내 나는 죽음을 알았다
조성식 시인(예산) / 외발 밀차
길을 간다 논두렁에서 밭고랑까지 길을 만들어 가는 외 발 밀차 처음 끌어본 사람은 힘으로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할머니가 한 짐 끌고 간다 양발로 걷기 힘든 세상의 모서리를 지팡이를 짚듯이 힘차게 밀고 가는 것 마늘밭 고랑이나 감자 밭 사이를 한치도 흐트리지 않고 신나게 달린다 딛는 곳 마다 길 아닌 땅 가고나면 새로운 길을 내는 저 당당한 외 발 수평이 흔들릴 때 밀차를 끌어라 세상의 무게를 골고루 나누는 일이 한 몸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란 걸 작대기 같은 버팀목으로 가르쳐 주는 치마 속 버선같은 작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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