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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159

고영서 시인 / 달빛 밟기 외 1편 고영서 시인 / 달빛 밟기 바람이나 쐬겠다고 잠깐 나선 저녁 한낮을 바스락대던 나뭇잎 속에서 쓰르라미 한 마리가 귀를 당긴다 너른 길이 끝나는 약수터를 지나 몇 개의 무덤을 지나 구부러진 산의 내장 환히 열어 놓고 무연한 달, 저 혼자 물이 올라 있다 휘모리로 감기는 바람 데불고 .. 2019. 8. 6.
최창균 시인 / 소 외 1편 최창균 시인 / 소 ㅡ우황에 대하여 우황 든 소는 캄캄한 밤 하얗게 지새며 우엉우엉 운다 이 세상을 아픈 생으로 살아 어둠조차 가눌 힘이 없는 밤 그 울음소리의 소 곁으로 다가가 우황주머니처럼 매달리어 있는 아버지 죽음에게 들킬 것 훤히 알고도 골수까지 사무친 막부림 당한 삶 되.. 2019. 8. 6.
강서연 시인 / 괜히 흔들렸다 강서연 시인 / 괜히 흔들렸다 여기가 뒷산 595번지 범동골 백산면 김제군도 아닌데 여의도 한복판 국회의사당 광장에 떨어진 솔방울만 보면 줍고 싶다 마대자루 가득 꾹꾹 눌러 담아 머리에 이고 지하철로 한강을 건너 마을버스 타고 굽이굽이 고개를 넘고 싶다 가다 지치면 마을 입구 판.. 2019. 8. 6.
금란 시인 / 새는 손잡지 않고 먼저 난다 금란 시인 / 새는 손잡지 않고 먼저 난다 선생님은 참 미남이야, 우리는 책상 밑에 숨어 말했지, 그가 의자에 앉아 흥얼거렸던 노래가 들려와, 너와 잠들고 말았던 책상 밑으로. 우리는 미남선생님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고, 교복 속으로 부풀어 오른 가슴을 들키고 싶어 했지, 절반으로 .. 2019. 8. 6.
김신용 시인 / 滴 ―모과꽃이 피었다 외 1편 김신용 시인 / 滴 ―모과꽃이 피었다 모과나무에는 못생긴 모과만 열리는 줄 알았는데, 뒹굴어 다니는 돌멩이처럼 울퉁불퉁 보잘 것 없는 모과만 달리는 줄 알았는데, 모과꽃이라니! 모과나무에도 꽃이 피나? 도대체 모과나무에서 꽃이 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하면서 쳐다보았는데, 저것.. 2019. 8. 6.
강순 시인 / 사라지고 싶은 것들 외 1편 강순 시인 / 사라지고 싶은 것들 피아노가 있던 자리에 햇빛이 이사 왔다. 햇빛은 꿈속에 사는 소문인데 어느 구멍으로 흐른 것일까. 의자가 있던 자리에 그림자가 남았다. 그림자는 기억 속에 사는 유령인데 어느 벽을 허문 것일까. 피아노가 있던 자리에 소문이 무성하다 피아노가 중고.. 2019. 8. 6.
김미정 시인 / 비의 법칙 외 1편 김미정 시인 / 비의 법칙 구름은 늘 부푸는 것 밖에 몰라 회색 노래를 연주하며 목을 빼고 울고 있는 목요일 앞으로 장미꽃 대신 우산을 들고 사람들은 모두 그림자를 흘려보내지. 당신과 나 사이 아득한 빗소리 아무런 대답도 없이 여름은 부쩍 키가 크고 나뭇잎은 아무렇게나 오래 머물.. 2019. 8. 6.
오봉옥 시인 / 이런 죽음 오봉옥 시인 / 이런 죽음 우리는 달빛과 달맞이꽃이 하는 은밀한 짓을 따라서 해보았습니다. 난 꼴린 달이 소나기빛을 쏟아내 듯이 그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궁을 연 달맞이꽃이 쏟아지는 달빛을 마구 빨아들이듯이 그녀는 나를 삼켰습니다. 황홀이 교성을 먹어치우고 있었습니다. .. 2019. 8. 5.
허청미 시인 / 내 중심은 늘 斜線이다 외 1편 허청미 시인 / 내 중심은 늘 斜線이다 비스듬한 계단을 꼿꼿하게 딛고 지하로 내려가 날마다 나는 전동차를 탄다 전동차 바닥이, 천정이 기울고 의자, 손잡이가 기울고 꼭 그만큼 기우는 나 강을 가로 지르는 육중한 다리가 기운다 유속을 따라 결로 기우는 강물 햇살에 찔려 자맥질하다 .. 2019. 8. 5.
성태현 시인 / 게놈 분석 외 1편 성태현 시인 / 게놈 분석 그러게 게걸스럽다 하지 않는가 제각기 게딱지만한 집 등에 지고 줄줄이 태어난 게, 서러워서 갯고동이든 소라껍질이든 뒤집어쓰려는 게지 눈에만 띄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게 허기가 아니다. 입만 있고 뒤가 없으니 앞뒤 가리지 않고 먹어치울 수밖에 부글.. 2019. 8. 5.
여종하 시인 / 사강 지나며 외 1편 여종하 시인 / 사강 지나며 다시 봄이 오고 도지는 그리움이 사강 지난다. 제 열병의 힘으로도 닫힌 하늘을 이탈하지 못하는 해는 슬픔의 반원만을 허공에 태우며 지우고, 삶의 외곽도로 굽어드는 길 쥐불 그슬린 들판 너머 불어오는 소금바람이 덫난 상처를 헤집는다. 겨우내 사람을 피.. 2019. 8. 5.
김현옥 시인 / 그랑 블루 외 1편 김현옥 시인 / 그랑 블루 살아온 길들을 지우며 떠난 길 그랑 블루, 너는 나의 최후의 집 삶의 강물이 이끄는 대로 순하게 네게로 갔네, 오래 익숙했던 마음의 집을 떠나 깊고 푸른 네 몸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내 붉은 아가미 물결 따라 춤추었네 오랜 미망의 길들이 사라지자 문득, 너는 .. 2019.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