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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159

리산 시인 / 잉크병 속에 남아있는 전나무 꿀 리산 시인 / 잉크병 속에 남아있는 전나무 꿀 바람이 분다면 더 좋을 것이다 돛이 달린 배와 자동차 얼마나 놀라운 장치와 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처음부터 목적지는 없이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천둥소리 비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 그토록 오래 눈먼 조.. 2019. 7. 25.
김연필 시인 / 질병 김연필 시인 / 질병 우주에서 푸른 꽃이 떨어지고 우리는 비탄에 잠겼다 꽃이 떨어지며 떨어진 모든 것들이 우리의 비참을 깨우고, 우리의 비참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다 밤 공기를 나눠 마시며 걸어도 조금도 비참해지지 않았다, 푸른 꽃이 떨어졌는데, 모든 것이 떨어졌.. 2019. 7. 25.
한경용 시인 / 고갈산 유튜브 바로가기 외 2편 한경용 시인 / 고갈산 유튜브 바로가기 부산 영도 초등학교 뒤에 고갈산 있다 헐벗겨져 목마른 사람들 부른 산 있다 도시락 못 싸 온 애린원, 천사원 아이들 있다 학교에서 나눠 준 강냉이떡으로 점심을 먹는 시절 있다 산 아래 닥지닥지 붙은 판잣집 있다 흥부네 같은 가난들이 주렁주렁 .. 2019. 7. 25.
이영춘 시인 / 안개 발톱 이영춘 시인 / 안개 발톱 기우뚱 몸 한쪽이 달 속으로 기울어진다. 뇌세 혈관을 가로질러 가는 안개의 발톱, 몽환의 터널이다. 얼음계단을 밟고 가는 구름 터널, 안개 통증이 내 몸에 집을 짓는다. 구름의 집, 구름의 암벽, 안개 바퀴가 날을 세운다. 날(刀)은 수시로 내 심장을 도려내고 심.. 2019. 7. 25.
이기와 시인 / 생선과 사과와 그리고 이기와 시인 / 생선과 사과와 그리고 밥상 위에 차려진 생선 한 마리 사과 한 알 배고픈 가을이 유리 창문에 기대어 밥 한 술 줍쇼. 구걸하듯 빤히 들여다보는 저녁. 이 저녁에 당도하지 못한 그대와 난, 먼 손님일 뿐. 사랑은 배고픔의 신호야. 서로의 밥으로 임하기 위해 여물고 싱싱해 지.. 2019. 7. 25.
양안다 시인 / 불가항력 양안다 시인 / 불가항력 언젠가 도로에서 죽은 쥐를 작은 그림자로 착각했을 때 내 머리 위로 어느 새 한 마리가 무리에서 이탈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나무 밑에서 너에게 말했다. 확실히 그럴 수 있겠어, 너는 모순적인 대답을 하고 눈을 감을 때 보이는 어둠이 모두에게 같을 수 있을까. .. 2019. 7. 25.
천수호 시인 / 빨간 잠 외 1편 천수호 시인 / 빨간 잠 그녀의 아름다움은 졸음에 있다 빳빳 헛헛한 날개로 허공을 가린 저 졸음은 겹눈으로 보는 시각의 오랜 습관이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벼랑 위 붉은 가시 끝이 제 핏줄과 닮아서 잠자리는 잠자코 수혈 받고 있다 링거 바늘에 고정된 저 고요한 날개 잠자리의 불.. 2019. 7. 24.
김원경 시인 / 침묵들 외 1편 김원경 시인 / 침묵들 죽은 자작나무에서 버섯이 자라는 걸 본 적이 있다 죽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 손톱을 기르는 것처럼 육체가 조금씩 액체가 되고 수증기가 되고 말을 잃고 미세하게 돋아나는 불안을 얘기하자 나는 간신히 침묵이 떨어지는 순간을 본다 나의 이 .. 2019. 7. 24.
정재분 시인 / 지중해* 정재분 시인 / 지중해* 약속을 어기고서 깜박 잊었다며 우는 듯 웃는 그녀로부터 시간의 지층에서 꺼낸 편지 같은 이별을 마침내 듣는다 사랑을 지키지 못하여 얻은 병과 눈물은 가슴과 등의 관계라고 사생아를 키우듯 추억을 감당했다고 빚 갚듯이 사랑에 차이기도 했다고 오답 노트 작.. 2019. 7. 24.
한영숙 시인 / 아카다시*에게 한영숙 시인 / 아카다시*에게 이스탄불 날씨는 엄습한 2월 하순이 겨울외투를 뚫고 내 머리칼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호텔 주차장에 내린 우리는 곰만한 덩치 큰 두 마리 개들이 관광버스 문 앞, 낯설게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짐짓 맹견 출현에 뒷걸음질 치고 진눈개비 너울지는 검은 하늘.. 2019. 7. 24.
김효은 시인 / 이스케이프 룸 김효은 시인 / 이스케이프 룸 사람들은 손잡이만 응시한다 눈알이 굴러가는 줄도 모르고 손잡이를 향해 주문을 왼다 혀가 굴러가는 줄도 모르고 무당 부르는 사람 열쇠수리공 부르는 사람 도끼 들고 달려드는 사람 석유와 신나 뿌리는 사람 서로 죽고 죽이는 사람 사람들 게으른 신은 애.. 2019. 7. 24.
이명수 시인 / 관흉국(貫胸國) 사람들 외 1편 이명수 시인 / 관흉국(貫胸國) 사람들 먼 나라 변방에 관흉국이 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 뚫린 가슴을 장대로 꿰어 앞뒤 사람이 어깨에 메고 먼 길을 간다아이들이 나무 막대로 들것을 만들어 부상당한 천사를 태우고 간다* 붕대를 머리에 감고, 들것의 막대를 .. 2019.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