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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159

이근화 시인 / 칸트의 동물원 외 1편 이근화 시인 / 칸트의 동물원 1 꼬리를 밟지 않기에는 꼬리는 너무 길고 가늘고 아름답다 2 고개가 반쯤 기울어졌다면 그건 자세가 아니라 행위지 초록 스타킹은 탄력을 잃고 곧 허물어진다 두 다리는 반복적이지만 길은 곧 사라지지 서툰 것들은 피를 흘리고 내내 피를 흘리지 3 고양이와.. 2019. 7. 27.
정선 시인 / 그대에게 가는 배 한 척을 세우기 위해 외 1편 정선 시인 / 그대에게 가는 배 한 척을 세우기 위해 불현듯 가방을 꾸렸네 언제나 결정은 새벽에 왔네 새벽을 세 번 부인하는 그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였네 귀를 막았네 안개와 그대는 한통속 아침이 오는 것을 훼방 놓았네 터널을 여덟 번 지나고 산맥의 늑골을 보고서 내 사랑의 .. 2019. 7. 27.
권규미 시인 / 이만 촌이라든가 권규미 시인 / 이만 촌이라든가 벚나무 아래에서는 슬픔을 꽃이라 불러도 좋아 타닥타닥 타오르는 어둠의 심지와 말랑한 눈발들의 분분한 적막들 그 낱낱의 이름을 슬픔이라고 해 봐 그렇게 생각해 봐 금방 태어난 아가처럼 가만히 눈을 감은 물방울의 시간들이 가지마다 오종종한 저 머.. 2019. 7. 27.
김근열 시인 / 커서 김근열 시인 / 커서 1. 지붕에서 빛나는 눈이 처마의 한곳에서 뚝뚝 빛이 흘러내리고 있다 바닥으로 떨어진 물빛들은 고랑을 타고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지 보이지 않았다 발자국 하나 없는 마당은 아직도 쌓인 눈으로 눈이 부셨다 2. 벽돌이 한 장 한 장이 쌓여지고 있다 아버지가 막노동.. 2019. 7. 27.
이승남 시인 / 빈 술잔에 취한 듯 이승남 시인 / 빈 술잔에 취한 듯 고체처럼 딱딱한 신음소리 우리가 버린 무질서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생생히 기억되는 통증의 혼란 강물 속을 둥둥 떠내려 온 물고기 떼 봄볕이, 죽어가는 물고기 내장 속으로 내시경(內視鏡)를 투사하고는 스냅사진 몇 장을 찍는다 곳곳이 검게 썩어 짓.. 2019. 7. 27.
이선 시인 / 채수영의 시세계 이선 시인 / 채수영의 시세계 ―계절의 환타지를 노래한 아르페지오 기법의 시 채수영은 4,000여 편의 방대한 시를 쓴 다작의 시인이다. 2018년 봄에 34편째 시집을 받았다. 한국에서 시집해설을 가장 많이 했다는 평판을 듣는 것도 채수영이 글쓰기를 사랑하며 작가로서 치열하게 저작활동.. 2019. 7. 27.
송연숙 시인 / 내재율 외 1편 송연숙 시인 / 내재율 양동이를 뒤집어쓰고 발성연습을 해보았다 목소리에는 신을 키우는 메아리가 있고 노래 속에는 귀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래가 종이처럼 구겨지는 것을 귀는 몰래 듣고 있었다 양동이는 요란한 소리를 품고 가을 내내 새들을 쫓았다 양동이에서 찌그러진 음.. 2019. 7. 27.
노혜봉 시인 / 꿈아, 무정한 꿈아 노혜봉 시인 / 꿈아, 무정한 꿈아 젖은 베 행주 (외할머니 눈물로 젖은 마음골짜기 같은), 마른 면 행주 (외할머니 바짝 마른 하얀 젖가슴 같은), 빨락 종이, 가위. 반질한 맏물고추를 도마에 놓고 위 아래로 알맞게 잘라낸다. 원기둥꼴이 된 붉은 고추의 안팎 칼자국이 다른, 뱃속까지 잘 익.. 2019. 7. 27.
김명리 시인 / 제비꽃 꽃잎 속 김명리 시인 / 제비꽃 꽃잎 속 퇴락한 절집의 돌계단에 오래 웅크리고 돌의 틈서리를 비집고 올라온 보랏빛 제비꽃 꽃잎 속을 헤아려본다. 어떤 슬픔도 삶의 산막 같은 몸뚱어리를 쉽사리 부서뜨리지는 못 했으니 제비꽃 꽃잎 속처럼 나 벌거벗은 채 천둥치는 빗속을 종종걸음으로 달려.. 2019. 7. 27.
최지하 시인 / 어떤 각오 외 1편 최지하 시인 / 어떤 각오 여기는 빈 칸이 많은 계절이라고 첫 줄에 쓴다. 목구멍을 넘기지 못한 문장이 여름의 이면에서 검게 우거지고 있을 때 하루에 한 칸씩 켜지는 창문 미열의 저녁은 저 창을 통해 오나. 그림자의 반쯤은 나도 모르게 네가 살지 않는 곳에 두고 온 불안을 혀를 깨물며.. 2019. 7. 27.
김신용 시인 / 도장골 시편 외 1편 김신용 시인 / 도장골 시편 ㅡ넝쿨의 힘 집 앞, 언덕배기에 서 있는 감나무에 호박 한 덩이가 열렸다 언덕 밑 밭 둔덕에 심어 놓았던 호박의 넝쿨이, 여름 내내 기어올라 가지에 매달아 놓은 것 잎이 무성할 때는 눈에 잘 띄지 않더니 잎 지고 나니, 등걸에 끈질기게 뻗어 오른 넝쿨의 궤적.. 2019. 7. 26.
이승희 시인 / 논둑에서 울다 2 외 1편 이승희 시인 / 논둑에서 울다 2 그냥 보면 안다. 다 안다. 도랑 쪽으로 귀 열어두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저 살림살이의 간결함. 산 하나를 다 담고도, 천년에 걸친 한 가계(家系)의 역사를 저리 명백하게 보여줄 수 있음을. 아프면 아픈 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해, 네 맘 다 알고말고, 괜찮아, .. 2019.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