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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세경 시인 / 히아신스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8.

오세경 시인 / 히아신스

 

 

여자가 꽃 대궁 속으로 들어간다

한 생을 화살표에 내맡긴다

화관을 머리에 이고 떠났던 자리로 되돌아올 것이다

물끄러미 여자가 사라진 입구를 들여다본다

한나절이 지났다 여자는,

화살표를 지우고 마음의 둥근 길을 따라갔으리라

제자리가 아닌 꽃밭너머 아득한 평원을 꿈꾸었으리라

길 잃은 자의 상처를 화관처럼 품었으리라

불끈 꽃대를 움켜쥔다

히아신스, 여자를 뱉어낸다

열두 폭 치마를 펼친다

향기없는여자색깔없는여자무늬없는여자

 표정없는여자얼룩없는여자그늘없는여자

열 두 폭 치마로도 감출 수 없는 울음들이

핏빛 울음들이 터져 나온다

향기가색깔이무늬가표정이얼룩이그늘이

설익은 한 생을 물들이며 깊어간다

 

 


 

 

오세경 시인 / 캐스터네츠

 

 

“하지만 캐스터네츠가 어디 있어야죠?”

중얼거리던 집시여자는 재빨리

노파의 하나 뿐인 접시를 산산조각내지요

당신이 캐스터네츠를 찾아 헤매는 동안

흑단이나 상아만 고집하며 온 생을 소모하는 동안

집시여자는 사기조각을 딸깍거리며

로말리스를 추면서 가볍게 페이지를 넘어가죠

캐스터네츠는 마음이 부추기는 곳

어디에나 있는 거라고 상냥히 일러주고 가지만

고매한 당신이 집시여자의 말을 새겨들을 리 있나요

당신의 로말리스는 천상의 리듬을 기다리며

한 페이지에 붙박인 채 서서히 굳어가고

대지의 부름대로 응답하던 집시여자는

문장을 부호를 행간을 무수히 지나 마지막 페이지에 당도하죠

이윽고 죽음이 깊은 잠처럼 여자를 덮치면

잠들지 않는 여자의 전설만 지상에 남아

저 권태로운 것들의 캐스터네츠가 되지요

딸깍딸깍, 사기조각의 기억들이

흑단이나 상아인양 명쾌하게 울려와

고여 있는 머물러 있는 변하지 않는 것들을 뒤흔들고 있어요

당신의 로말리스도 몸을 뒤척이며 첫발을 내딛겠죠

 

자, 서둘러 페이지를 넘겨야죠.

 

 


 

오세경 시인

부산에서 출생.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2008년 《시현실》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발톱 다듬는 여자』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