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 시인 / 빵
나는 부풀어 무명의 신에게 닿는다 얼굴 없는 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여 달의 종족이거나 오리 알쯤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몸을 떼어 몇 개의 알을 더 낳기도 한다
이미 죽어서 지워진 몸 용서라는 말은 하지 말자
당신을 만나는 동안 작은 속삭임으로 신의 귀를 간질인다 시간의 악몽을 통과하는 잠 어둠으로 빚은 세계의 모퉁이에 부딪힌 빛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이곳에서 저곳까지 길이 없으니 나는 아직 까막눈이고 하느님도 보지 못한 희고 둥근 시간의 덩어리들
꽉꽉 눌러 사라진 꽃의 표정을 찾는다
여기저기 귀들이 펄럭인다 입이 돋는다 목련이 오래 감추어둔 혀를 내밀어 종알거리듯 곳곳에서 부풀어 오르는 환한 살풍선들
제 말이 들리나요
밀가루 반죽 속에서 동글동글 태어나는 목소리들 나는 여전히 뜨겁고 캄캄한 살이어서 거듭 달의 종족이라고 불러본다 그래야 오늘도 말랑말랑한 하느님인 것
빵이라 부를 때 당신은 영영 보이지 않으니
계간 『시산맥』 2017년 여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재섭 시인 / 적막한 사랑 외 2편 (0) | 2022.08.18 |
---|---|
정숙 시인 / 도배장이 외 1편 (0) | 2022.08.18 |
김성춘 시인 / 길 위의 피아노 - 은유에게* 외 4편 (0) | 2022.08.17 |
윤효 시인 / 생업 외 1편 (0) | 2022.08.17 |
심언주 시인 / 엘리베이터 외 1편 (0) | 2022.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