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아 시인 / 노을을 캐다
새빨갛게 물든 한 폭의 안골포 저녁 해가 횃불처럼 포구를 밝히는 동안 바다와 갯벌 그 배접 끝에서 노부부가 노을을 캐고 있다
늙은 아내가 호미로 한 움큼씩 노을을 캐내면 노인은 깜짝 놀라 입을 꼭 다문 노을을 얼른 망에 주워 담는다 횃불이 사그라지기 전에 딱 하루만큼만 채운 노을 자루를 비척비척 밀며 끌며 가는 노부부의 느리고 굼뜬 실루엣, 저리 더딘데 어느새 이리 멀리 왔을까
캐낸다는 것은 자벌레처럼 수없이 구부정한 허리를 폈다가 구부리는 수행 생채기 덧나고 덧나 굳은살 박인 오체투지 같은 것
막다른 아픔과 적막한 슬픔이 물든 안골포의 하루 끝없는 이야기처럼 퇴장하면 호미자루처럼 접힌 노부부의 긴 그림자 가로등 환한 언덕을 달팽이처럼 기어 올라간다
큰 대야 속의 노을 뻐끔뻐끔 바튼 잠을 해감하는 동안 밤새 칠흑 같은 갯벌은 두근두근 여울지겠다
-워란 『한국시인』 2021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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