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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순 시인 / 식물성 계절 외 1편 신정순 시인 / 식물성 계절 박 할아버지와 김 할머니는 요양원 친구 무릎에 앉은 햇빛 한 점도 나누는 사이다 세월에 순해진 식물성 심장 비등점을 놓쳐 끓어오르진 못해도 사탕 몇 개 쥐고 오는 걸음이 천진하다 나란히 앉아 서로의 귀에 흘려 넣는 말들은 자주 길을 잃어 엉뚱하게 가 닿기도 한다 젊음의 한때를 늘어놓는 박 노인이 주먹을 불끈 쥐면 이제야 사내다운 사내를 만난 듯 김 노인 심장에 과부하가 걸린다 여러 날 김 노인 침대가 비었다 애지중지 키우던 난이 말라가고 소식에 목마른 박 할아버지는 던 눈빛으로 햇빛이 드는 창 쪽을 기웃거린다 챙겨 둔 귤도 시든 지 오래다 겨울 속에 숨은 봄이 영 오지 않으려는지 식은 해만 창틀에 걸리는 계절이다 신정순 시인 / 안다는 것 처마 밑 거미줄에 매미 하나 걸렸다 .. 2022. 8. 30.
윤영숙 시인(보은) / 문(門)앞에서 외 1편 윤영숙 시인(보은) / 문(門 )앞에서 대가리를 꼿꼿하게 치켜 든 독 오른 뱀 앞에서 개구리 홀로 얼어붙은 듯 가부좌를 틀고 있다 비늘 돋친 이 독한 세상마저 잊어 버리려는 듯 투명한 눈을 반쁨 내려 감은 채 마른 번개 널름거리는 캄캄한 아가리 속 꿈틀거리는 욕망이여, 온몸 징그러운 무늬의 삶이여 예서 길이 끝나는구나 벼랑 끝에 서고 보니 길 없는 깊은 세상이 더 가까워 보이는구나 마지막 한 걸음, 뒤에서 등을 밀어 그래, 가자 가자 신 한 켤레 놓여 있는 물가 멀리 깊고 기운 물갈퀴 하나 또 한세상 힘겹게 건너고 있다 윤영숙 시인(보은) / 회화나무 평전 늙은 회화나무 한 그루, 굽은 허리를 쇠기둥에 기대어 쉬고 있다 가슴 한켠 시멘트로 채워진 무거운 노구 이끌고 남쪽으로만 길을 내는 곁가지들 건들기만.. 2022. 8. 30.
송기영 시인 / 실험실에서 보낸 한 철 외 3편 송기영 시인 / 실험실에서 보낸 한 철 모든 현실은 꿈이다. 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를 꾸어 낸다. 이봐 몇 푼만 꿔 줘. 너는 지감을 열어, 몇 개의 나를 손바닥 위에 던져 준다. 간지러워, 손바닥에 금이 간다. 금이 몇 돈 모이면 장사라도 해야지. 손님 없는 밤엔 한 권씩 책을 먹고 바지에 나를 싼다. 창피하지 않아, 꿈이니까. 책 표지엔 늘 위태롭게 매달린 여자가 있다. 오늘은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자, 그러니 어서 뛰어내려. 동틀 무렵, 나는 그녀를 거뜬히 받아 낸다. 그녀는 부러진 두 팔을 엮어 작은 아이들을 만들어 준다. 아이들은 내 심장을 오도독 씹어 먹고, 실핏줄을 엮어 그네를 탄다. 웃는 얼굴로 나는 말한다. 힘들지 않아, 꿈인걸. 오래오래 참다가 침 대신 혓바닥을 삼.. 2022. 8. 30.
이민숙 시인 / 카르페 디엠 외 1편 이민숙 시인 / 카르페 디엠 ​ 한 번도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결코 그대는 어제라고 뒤돌아 보지 않았다 한 줄기 새파란 천둥번개 거친 바위를 퉁탕거리는 계곡물이었다 지금도 온몸이 뜨거운 능소화로 피어나는 정오 물속에 한목숨 풀어헤쳐버리는 물푸레나무 날마다 펄떡꺼리는 상어 한 마리, 수평선에 젖 물리는 물고래 푸른 영혼이었다 ​ 이민숙 시인 / 하화도行 8 -동지 팥죽 동백꽃 향기 한 알 하늬바람 파르르 두 알 극락에서 보내온 할머니 웃음 세 알 우체통에 꽂힌 그대의 키스 일곱 알 저 너머너머 고비 초원의 말발굽 소리 열세 알 이민숙 시인 전라남도 순천 출생. 1998년 《사람의 깊이》 창간호에 〈가족〉외 5편의 시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나비 그리는 여자』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 『.. 2022. 8. 30.
윤영숙 시인(홍성) / 지구에서 1cm 떨어진 사내 외 1편 윤영숙 시인(홍성) / 지구에서 1cm 떨어진 사내 신문 한 뭉치 옆구리에 끼고 몇 걸음 앞서 돌계단 오르는 저 사내 구두 뒤꿈치가 움푹 파였다 한 계단 두 계단 발걸음 옮길 때마다 제 살 깎아내느라 힘깨나 쏟았을 구두 뒷 바닥, 허방이 체중을 받아 안는다 어느 광포한 시간의 이빨에 뜯겼을까 1cm 들린 채 떠 가고 있다 구두는 절개지 돌계단을 접었다 펴며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른다 푸른 지폐 몇 장 들이밀며 일 년 무료 신문구독권을 권해보지만 중천인데 마수걸이도 없다 구두 뒤꿈치 허방이 힐끗 내게 눈짓을 한다 이제 그만 따라오라는 것일까 저 非메이커 구두도 지구에서 사는 법 익히느라 헛심 뺄 때마다 등뼈 곧추세웠을 것이다 푹푹 꺼지는 중심 받아 안으려고 가랑이 진 종아리 근육을 바짝 조였을 것이다 바닥을.. 2022. 8. 30.
김홍성 시인 / 아름다운 당신의 향기 외 1편 김홍성 시인 / 아름다운 당신의 향기 바람따라 고요히 흔들리며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향기 나누는 꽃을 바라보면 나눔이란 이토록 아름답고 평화로움이 묻어나올까요 우리는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려 화장을 했을 뿐이지 아름다운 마음을 가슴으로 나눈적 있었던가요 편견과 오해가 가득하여 가슴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말에도 아픔이 묻어나지 않던가요 잔잔한 강에 작은 돌 하나 던졌을 뿐인데 얼마나 출렁이던가요 나는 행복할지 몰라도 그 돌에 맞은 사람은 얼마나 아플까요 아름다운 향기의 말은 꽃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밝은 내일의 꿈이요 희망이기에 가슴속에 배려라는 향기를 나눈다면 당신의 마음이 얼음짱처럼 차거웠다면 어느땐가 따뜻한 가슴을 만지며 행복해 할 것입니다 김홍성 시인 / 작은 것이 가장.. 2022. 8. 30.
이은화 시인 / 달은 어떻게 죽는가 외 1편 이은화 시인 / 달은 어떻게 죽는가 낳는 순간, 산화된다는 예언 낳지 않으리라 산도를 빠져나온 순간 바닥을 차고 떠오를 하늘이 없는 권과 권, 편과 편 사이에 흘린 세상에서 달 무리로 질 연한 뼛조각들의 발길질을 참는 밤 해금 줄 끊어질 듯한 울음마저 주워 먹는 창백한 현실 내게는 이름이 없다, 너에게 줄 이름이 기운 침대 끝에서 외치는, 우리는 이름이 없다 가위 눌림을 견디는 내 뱃속은 비문 없는 달들의 영원한 공동묘지 편 편의 무덤 앞에서 오늘은 나도 내 몸이 무섭다 이은화 시인 /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닥나무 종이와 플라타너스 잎과 흰 벽은 손이 닿는 곳마다 놓였는데 정작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가방과 주머니, 수첩과 머릿속을 뒤져도 찾을 수 없다 어디로 간 것일까, 허구한 날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던.. 2022. 8. 30.
우진용 시인 / 나무 시인 외 1편 우진용 시인 / 나무 시인 나무는 시인보다 더 시적이라고 상투적인 언사가 아니다 초록으로 세상을 점령한 위세에 늘려서도 철 늦은 빈 가지 쓸쓸한 뒷모습 때문도 아니다 밑둥치 남기고 트럭에 실려서 간 뒤, 비로소 그가 남긴 둥근 시구를 보았다 어느 시인이 온몸으로 제 나이를 그리겠느냐 나도 나이테를 두를 줄 아는 나이가 되었는가 담벽에 기댄 채 묵묵히 깊어가는 그의 그림자 채머리 흔들며 아니다 아니다 이마에 스친 바람도 머리 풀며 취하도록 빗물에 흠뻑 젖었던 날도 돌아보면 한 시절 삭정이처럼 삭이게 되었는가 겨울 초입,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는 그를 본다 마지막 남은 잎새 몇 장 발밑에 내려놓고 한 해 단 한 줄만을 남길 줄 아는 그는 온 몸으로 테를 두른 계관시인이다 우진용 시인 / 허공에 대하여 허공.. 2022. 8. 30.
김윤환 시인 / 투명한 그물 외 2편 김윤환 시인 / 투명한 그물 엄마는 콜센터에서 아빠는 물류센터에서 아이는 피씨방에서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할아버지는 복지센터에서 익숙치 않는 쉼표의 그물에 걸린 가족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죽어도 걸리지 않고 걸려도 보이지 않는 쉼표의 고리들이 둥둥 떠다녔다 걸려 울다가 잠드는 매미의 가족이 있었다 곁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행렬들 순서가 흐트러질수록 선명한 노래며 죽은 바다에 떠도는 해파리처럼 그물에 걸린 N차의 울음소리가 마을을 휘감고 있었다 울어도 울어도 죽어야만 들리는 위험한 매미의 노래가 있었다 끝나지 않는 투명한 그물이 있었다 가난해야만 걸리는 가시 그물이 있었다 거둬들일 수 없어 익숙한 지옥 두려움을 껴안고 의심을 껴안고 서로를 위로하는 동안 N차들의 마을에는 무거운 그물이 함께 살고 있었다 김윤.. 2022. 8. 30.
[길 위의 목자 양업] (33) 최양업과 교회음악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33) 최양업과 교회음악 노래로 쉽게 따라 부르며 주요교리 익히도록 도와 가톨릭신문 2022-08-28 [제3308호, 12면]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악기 요청하며 음악 통한 신앙 교육·신앙심 고취 도모 당시 유행하던 곡조 차용한 천주가사 교리의 토착화 시도한 사례로 평가 배티성지 최양업 신부 박물관에 재현해 놓은 최양업 신부의 손풍금. 글로만 보던 복음말씀에 선율을 덧붙이면 더욱 각인이 쉽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에 따르면 ‘교회는 가톨릭 종교음악이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거나 일치를 초래하며, 거룩한 의식을 더욱 성대하게 감싸 줌은 물론,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聖化)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그 목적을 정의하고 있다. 세 차례의.. 2022. 8. 30.
임재춘 시인 / 시작의 습관 외 2편 임재춘 시인 / 시작의 습관 해가 산기슭 가까이 다가가 마당은 모닥불을 지피고 뜰 한쪽엔 딸기 납작하게 엎드렸다 줄줄이 작은 열매들 몸을 숨겼다 나무 의자는 잔디밭의 어스름을 누르며 주저앉는다 텃밭 한 쪽에 드문드문 서 있는 비스듬한 외등 흐릿하게 뜰에 비친다 쥐들이 자주 닭을 넘보는 닭장 철조망의 구멍을 막는 일 손보던 일꾼들이 손을 씻고 떠난 후 어둠은 알을 품듯 호젓하게 뜰을 감싸 안는다 울타리 너머에 저녁별 하나 비치다 사라진다 시도 내 마음속에 잠깐 비친다, 길게 품으로 했지만 밤 깊어가고 머릿속 줄줄이 딸려 나오던 말들이 희미한 별들과 함께 잠속으로 빠져든다 닭들도 조용히 별 꿈을 꾼다 - 시와 사상 2012 가을호 - 임재춘 시인 / 잡념 간밤에 일찍부터 꿈을 꾸었다 불면과 잡꿈과의 사이 도.. 2022. 8. 30.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182. 복음과 사회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82. 복음과 사회교리 (「간추린 사회교리」 181항) 이웃과 사회 향한 참된 회심 요청되는 세상 가톨릭신문 2022-08-28 [제3308호, 18면] 풍요로워진 사회에 비례해 인간의 욕심은 더 많아지고 이웃 위한 사랑은 줄어들어 공동선 위한 재화 사용 절실 서소문역사공원에 세워진 ‘노숙자 예수’상. “초희는 점점 마담뚜를 좋아하게 되었다. 마담뚜하고 같이 있을 때처럼 자신의 행복이 확실해질 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담뚜를 통해 듣는 상류사회의 갖가지 풍속의 소문은 그녀가 빠른 시일 안에 귀부인다워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서울 시내 일류 귀부인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양장점은 명동 어디고, 미용실은 어디고, 명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어디고, 마담뚜는.. 2022.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