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근대)937 정지용 시인 / 비 외 1편 정지용 시인 / 비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섰거니 하여 꼬리 치날리어 세우고, 종종 다리 까칠한 산(山)새 걸음걸이. 여울 지어 수척한 흰 물살 갈갈이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듣는 빗낱 붉은 잎 잎 소란히 밟고 간다. -<문장>(1941)- 정지용 시인 / 말(馬) 말아, .. 2019. 6. 29. 김수영 시인 / 사령(死靈) 김수영 시인 / 사령(死靈) 활자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나의 영(靈)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냐. 벗이여, 그대의 말을 고개 숙이고 듣는 것이 그대는 마음에 들지 않겠지. 마음에 들지 않어라.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어라. 이 황혼도 저 돌벽 아래 잡초도 담.. 2019. 6. 28. 노천명 시인 / 사슴 외 1편 노천명 시인 /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族屬)이었다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鄕愁)에 슬픈 모가질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산호림>.. 2019. 6. 28. 이상화 시인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 2019. 6. 27. 심훈 시인 / 그날이 오면 심훈 시인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 2019. 6. 27. 백석 시인 / 고향 외 1편 백석 시인 / 고향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 2019. 6. 26. 이상 시인 / 거울 이상 시인 /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 것이요.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알아듣지 못하는딱한귀가두 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 때문에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2019. 6. 26. 한하운 시인 / 비 오는 길 외 2편 한하운 시인 / 비 오는 길 주막(酒幕)도 비를 맞네 가는 나그네 빗길을 갈까 쉬어서 갈까 무슨 길 바삐 바삐 가는 나그네 쉬어 갈 줄 모르랴 한잔 술을 모르랴. 한하운 시인 / 자벌레의 밤 나의 상류(上流)에서 이 얼마나 멀리 떠내려온 밤이다. 물결 닿는 대로 바람에 띄워 보낸 작은 나의 .. 2019. 6. 25. 유치환 시인 / 출생기(出生記) 외 5편 유치환 시인 / 출생기(出生記) 검정 포대기 같은 까마귀 울음소리 고을에 떠나지 않고 밤이면 부엉이 괴괴히 울어 남쪽 먼 포구의 백성의 순탄한 마음에도 상서롭지 못한 세대의 어둔 바람이 불어오던 융희(隆熙) 2년! 그래도 계절만은 천년을 다채(多彩)하여 지붕에 박넌출 남풍에 자라고.. 2019. 6. 25. 한하운 시인 / 향수 외 3편 한하운 시인 / 향수 내 고향 함흥은 수수밭 익는 마을 누나가 시집갈 때 가마타고 그 길로 갔다 내 고향 함흥은 능금이 빨간 마을 누나가 수줍어할 때 수수밭은 익어갔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 2019. 6. 24. 유치환 시인 / 저녁놀 외 5편 유치환 시인 / 저녁놀 굶주리는 마을 위에 놀이 떴다 화안히 곱기만 한 저녁놀이 떴다 가신 듯이 집집이 연기도 안 오르고 어린 것들 늙은이는 먼저 풀어져 그대로 잠자리에 들고 끼니를 놓으니 할 일이 없어 쉰네도 나와 참 고운 놀을 본다 원도 사또도 대감도 옛 같이 없잖아 있어 거들.. 2019. 6. 24. 한하운 시인 / 손가락 한 마디 외 3편 한하운 시인 / 손가락 한 마디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한하운 시인 / 벌 죄.. 2019. 6. 23. 이전 1 ··· 65 66 67 68 69 70 71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