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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937

김광균 시인 / 황혼가(黃昏歌) 외 2편 김광균 시인 / 황혼가(黃昏歌) 여기 낯익은 솔밭 사이사이에 들국화 가즈런―히 피어 있으나 하늘 한구석은 그냥 비어 있고나. 백만장안에 누가 살기에 오늘도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도 없이 해가 지느냐. 저물어 가는 나의 호수 호수 속 자욱―한 안개 속에서 등불이 하나 둘 깜박거린다. .. 2019. 7. 4.
오장환 시인 / 고향 앞에서 오장환 시인 / 고향 앞에서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 2019. 7. 4.
신석정 시인 / 꽃덤불 외 2편 신석정 시인 / 꽃덤불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 2019. 7. 4.
이호우 시인 / 달밤 이호우 시인 / 달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 2019. 7. 3.
장만영 시인 / 달·포도·잎사귀 장만영 시인 / 달·포도·잎사귀 순이, 벌레 우는 고풍(古風)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 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넝쿨 밑에 어린 .. 2019. 7. 3.
한용운 시인 / 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시인 /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 2019. 7. 2.
김광균 시인 / 데생 김광균 시인 / 데생 1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단한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라빛 색지(色紙)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薔薇) 목장(牧場)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조선일보>(1939)- 김.. 2019. 7. 2.
김광섭 시인 / 마음 김광섭 시인 /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 2019. 7. 1.
오상순 시인 / 방랑의 마음 오상순 시인 / 방랑의 마음 1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옛성(城)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 2019. 7. 1.
윤동주 시인 / 병원 윤동주 시인 / 병원(病院)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病院)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女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日光浴)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女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 2019. 6. 30.
변영로 시인 / 봄비 변영로 시인 / 봄비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 2019. 6. 30.
김억 시인 / 봄은 간다 김억 시인 / 봄은 간다 밤이도다 봄이도다. 밤만도 애닯은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태서문예신보>(1918)- 김.. 2019.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