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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937

신석정 시인 / 하도 햇볕이 다냥해서 외 5편 신석정 시인 / 하도 햇볕이 다냥해서 하도 햇볕이 다냥해서 뱀이 부시시 눈을 떠보았다. ― 그러나 아직 겨울이었다. 하도 땅속이 훈훈해서 개구리도 뒷발을 쭈욱 펴보았다. ― 그러나 봄은 아니었다. 어디서 살얼음 풀린 물소리가 나서 나무움들도 살포시 밖을 내다보았다. ― 그러나 머.. 2020. 1. 9.
김현승 시인 / 나무 외 4편 김현승 시인 / 나무 하느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 우리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나무이다. 그 모양이 우리를 꼭 닮았다. 참나무는 튼튼한 어른들과 같고 앵두나무의 키와 그 빨간 뺨은 소년들과 같다. 우리가 저물 녘에 들에 나아가 종소리를 들으며 긴 그림자를 늘이면 나무들도 우리 .. 2020. 1. 8.
박용래 시인 / 시락죽 외 4편 박용래 시인 / 시락죽 바닥 난 통파 움 속의 강설(降雪) 꼭두새벽부터 강설(降雪)을 쓸고 동짓날 시락죽이나 끓이며 휘젓고 있을 귀뿌리 가린 후살이의 목수건(木手巾).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앵두, 살구꽃 피면 앵두꽃 피면 앵두바람 살구꽃 피면 살구바람 보리바람에 고뿔 들.. 2020. 1. 8.
신석정 시인 / 추야장(秋夜長) 고조(古調) 외 5편 신석정 시인 / 추야장(秋夜長) 고조(古調) 오동(梧桐)에 비낀 달 가을은 치워라. 고매(古梅) 성근 가지 영창에 거지었고, 철새 나는 하늘을 무서리 나려 풀벌레 사운대는 밤은 정작 고요도 한저이고 어디서 대피리소리 마디마디 가슴이 시리다. 시나대숲에 바람이 머물어 촛불도 눈물짓는 .. 2020. 1. 8.
김현승 시인 / 고독 외 4편 김현승 시인 / 고독 너를 잃은 것도 나를 얻은 것도 아니다. 네 눈물로 나를 씻어 주지 않았고 네 웃음이 내 품에서 장미처럼 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눈물은 쉬이 마르고 장미는 지는 날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너를 잃은 것을 너는 모른다. 그것은 나와 내 안의 잃.. 2020. 1. 7.
박용래 시인 / 상치꽃 아욱꽃 외 5편 박용래 시인 / 상치꽃 아욱꽃 상치꽃은 상치 대궁만큼 웃네. 아욱꽃은 아욱 대궁만큼 잔 한잔 비우고 잔 비우고 배꼽 내놓고 웃네. 이끼 낀 돌담 아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다는 시인의 이름 잊었네. 백발의 꽃대궁, 문학예술사, 1980 박용래 시인 / 샘터 샘바닥에 걸린 하현(下弦) 얼음을 뜨.. 2020. 1. 7.
신석정 시인 / 입춘(立春) 외 4편 신석정 시인 / 입춘(立春) 가벼운 기침에도 허리가 울리더니 엊그제 마파람엔 능금도 바람이 들겠다. 저 노곤한 햇볕에 등이 근지러운 곤충처럼 나도 맨발로 토방 아랠 살그머니 내려가고 싶다. `남풍이 ×m의 속도로 불고 곳에 따라서는 한때 눈 또는 비가 내리겠습니다' 대바람소리, .. 2020. 1. 7.
김현승 시인 / 가을이 오는 날 외 4편 김현승 시인 / 가을이 오는 날 구월에 처음 만난 네게서는 나프탈린 냄새가 풍긴다. 비록 묵은 네 양복이긴 하지만 철을 아는 너의 넥타인 이달의 하늘처럼 고웁다. 그리하여 구월은 가을의 첫입술을 서늘한 이마에 받는 달. 그리고 생각하는 혼(魂)이 처음으로 네 육체 안에 들었을 때와 .. 2020. 1. 6.
박용래 시인 / 별리(別離) 외 4편 박용래 시인 / 별리(別離) 노을 속에 손을 들고 있었다, 도라지빛. ―그리고 아무말도 없었다. 손 끝에 방울새는 울고 있었다. 아지풀, 민음사, 1975 박용래 시인 / 불도둑 하늘가에 내리는 황소떼를 보다 흐르는 흐르는 피보래의 눈물을 보다 불도둑 흉벽(胸壁)에 울리는 채찍 ―산 자(者)의 .. 2020. 1. 6.
신석정 시인 / 오는 팔월(八月)에도 외 4편 신석정 시인 / 오는 팔월(八月)에도 아주 오랜 옛날 할아버지의 긴 장죽(長竹)에 부싯돌을 그어 대면 푸시시 푸시시 잎담배 타는 것이 퍽은 신기로웠다. 그것은 호랑이가 새낄 쳐 나간다는 `변산(邊山)'이란 두메서 밀경(密耕)하는 담배가 가만가만 들어오던 때의 일이었다. 아직 소년이었.. 2020. 1. 6.
김현승 시인 / 가을 외 4편 김현승 시인 / 가을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 2020. 1. 5.
박용래 시인 / 먼 바다 외 4편 박용래 시인 / 먼 바다 마을로 기우는 언덕, 머흐는 구름에 낮게 낮게 지붕밑 드리우는 종소리에 돛을 올려라 어디메, 막 피는 접시꽃 새하얀 마디마다 감빛 돛을 올려라 오늘의 아픔 아픔의 먼 바다에.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84 박용래 시인 / 모일(某日) 1 쌀 씻는 소리에 눈물 머금는 .. 2020.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