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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937

모윤숙 시인 / 야경(夜景) 외 2편 모윤숙 시인 / 야경(夜景) 병아리 나래에 바람이 설레고 방아 기슭에 물소리 차다 이삭 담긴 함지박에 황혼이 덮이면 아버지의 호밋날도 흙 속에 잠든다 토방의 등불이 그윽히 정다워 도라지는 어느새 다아 찢어 담갔다 맞은편 개 바자에 풀먹인 빨래들이 꽃핀 듯 환하다 대림 피던 분이 .. 2020. 1. 21.
박남수 시인 / 거울 -1- 외 4편 박남수 시인 / 거울 -1- 살아 있는 얼굴을 죽음의 굳은 곳으로 데리고 가는 거울의 이쪽은 현실이지만 저쪽은 뒤집은 현실. 저쪽에는 침묵으로 말하는 신처럼 온몸이 빛으로 맑게 닦아져 있다. 사람은 거울 앞에서 신의 사도처럼 어여쁘게 위장하고 어여쁘게 속임말을 하는 뒤집은 현실의 .. 2020. 1. 20.
모윤숙 시인 / 소망 외 2편 모윤숙 시인 / 소망 나는 때때로 칠빛 나는 어둠에서 신음하는 내 혼의 소리를 듣습니다 막힌 골짜기 서려 있는 안개 밑으로 빠져 가는 내 발길을 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리를 들고 구름 속에 속삭이는 외마디 음성을 들어요 또 한 번 더 웃어 보라 또 한 번 더 일어나 보라는 저 앞엔 .. 2020. 1. 20.
노천명 시인 / 출범 외 2편 노천명 시인 / 출범 기선이 떠나고 난 항구에는 끊어진 테잎들만 싱겁게 구을르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처럼…… 바다는 다시 침묵을 쓰고 누웠다 마녀의 불길한 예언도 없었건만 건너기 어려운 바다를 사이에 두기로 했다 마지막 말을 삼키고…… 영영 떠나 보내는 마음도 실은 강하지 .. 2020. 1. 20.
박남수 시인 / 갈매기 소묘(素描) 외 3편 박남수 시인 / 갈매기 소묘(素描) 1 하늘이 낮게 드리고 물 면(面)이 보푸는 그 눌리워 팽창한 공간에 가쁜 갈매기 하나 있었다. 2 바람이 일고 물이 결을 흔드는 그 설레임에 떠 있던 갈매기는 그저 뒤척이는 한가운데서 중심을 잡고 있었다. 3 내려 꼰지는 바람의 방향에 꼰지고, 튀치는 바.. 2020. 1. 19.
모윤숙 시인 / 밀밭에 선 여자 외 2편 모윤숙 시인 / 밀밭에 선 여자 수기(愁氣)에 물들지 않은 명랑한 석양 남부 고려의 한 촌락이 유(柔)한 바람에 미소한다 고운 발자국 소리 밭 사이에 사운사운 광우리 들린 젊음 손 보라빛 다인 밀밭 속에 사랑홉다 별은 어둠에 안겨 땅 저편으로 떠 오고 고개와 이랑으로 아가의 꿈같이 느.. 2020. 1. 19.
노천명 시인 / 추성(秋聲) 외 2편 노천명 시인 / 추성(秋聲) 푸라타나쓰의 표정이 어느 틈에 이렇게 달라졌나 하늘을 쳐다본다 청징한 바닷가에 다시 은하가 맑다 눈을 땅으로 떨어뜨리며 내가 당황하다 창변, 매일신보사, 1945 노천명 시인 / 춘분 한고방 재어 놨던 석탄이 휑하니 나간 자리 숨었던 봄이 드러났다 얼래 시.. 2020. 1. 19.
모윤숙 시인 / 무덤에 내리는 소낙비 외 2편 모윤숙 시인 / 무덤에 내리는 소낙비 썩은 냄새에 몸이 저리다 헐린 무덤 새에 번개에 몰리는 소나기 내리는 밤 짙은 칠빛으로 웅웅거리고 파도 같은 바람이 머리올을 끄은다 해골이 고운 옷을 입고 요녀처럼 웃는다 그는 다시 옷을 벗고 길다란 엿가락이 되어 입을 벌린다 몸은 벌써 석.. 2020. 1. 18.
노천명 시인 / 장미 외 2편 노천명 시인 / 장미 맘 속 붉은 장미를 우지직끈 꺾어 보내 놓고 그날부터 내 안에선 번뇌가 자라다 늬 수정 같은 맘에 나 한 점 티 되어 무겁게 자리하면 어찌하랴 차라리 얼음같이 얼어 버리련다 하늘보다 나무모양 우뚝 서 버리련다 아니 낙엽처럼 섧게 날아가 버리련다 창변, 매일신보.. 2020. 1. 18.
김현승 시인 / 형광등 외 3편 김현승 시인 / 형광등 갑자기 밝아지면 스스로도 눈이 부신 듯, 깜빡깜빡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켜지는…… 더 밝으면서도 밝음과 겸양의 수줍은 이 불빛. 달빛을 떠난 지 오래이면서도 아주까리 호롱불보다도 더 달빛에 가까이 가려는 파르스럼한 정교한 손으로 만든 이 불빛. 번쩍번쩍 .. 2020. 1. 18.
모윤숙 시인 / 논두렁길 외 2편 모윤숙 시인 / 논두렁길 산도 골짜기도 안 보이는 작은 길에 환히 터진 하늘이 싫고 서툴게 들리는 새 소리도 조심스러워 안 갈 수도 없는 외오리 십리 길 가다가 큰 길이 나오면 유격대가 나오려니 그대로 앉아 해를 지울까 해가 지거든 다시 걸을까 어제 자던 무덤 옆이라도 찾아 갈까 .. 2020. 1. 17.
노천명 시인 /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 외 2편 노천명 시인 /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 아름다운 얘기를 좀 하자 별이 자꾸 우리를 보지 않느냐 닷돈짜리 왜떡을 사 먹을 제도 살구꽃이 환한 마을에서 우리는 정답게 지냈다 성황당 고개를 넘으면서도 우리 서로 의지하면 든든했다 하필 옛날이 그리울 것이냐만 늬 안에도 내 속에도 시방.. 2020.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