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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41

정준영 시인 / 하트의 종말 정준영 시인 / 하트의 종말 하트의 반을 쪼개어 반만한 하트를 만들었습니다그 반의 반을 쪼개어 반의 반만한 하트를 만들었습니다그 다음은 아시죠?저는 계속 반씩 쪼개 나갈 것입니다그런데 점점 작아지기만 할 뿐 아주 작은아주 아주 작은아주 아주 아주 작은 하트들이배시시 손톱조개처럼 생겨납니다 하얀하트가 밥김으로 퍼져나갑니다푸른주홍하트가 노을 속에 떠 다닙니다투명맑은하트가 숨 쉬는 콧구멍 속으로 떼를 지어 밀려 들어옵니다푸르딩딩고무혈관에 별사탕 피가 돕니다파도가 부서지면 비린조각하트들이 우루루 쏟아집니다 시신경아려오게극도로작은하트는 작아서 절대로 안 보입니다우주보다더우주라서우주하트는 커서 절대로 안 보입니다 모래밭에 젊은이들이 둘러 앉아 홀랑하트를 구워 먹느라정신이 하나밖에 없습니다가시는길에사뿐히즈려밟을하트가.. 2022. 9. 28.
김기덕 시인 / 악마의 중독 외 1편 김기덕 시인 / 악마의 중독 염소가 검은 상자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열어보았지젖이 범람한 젖꼭지에서 쓰디쓴 강이 흘렀어어둠 속에 뿔은 왕관처럼 반짝였고아미에 새겨진 펜타 그램에선 게이의 웃음이 새어나왔어박쥐의 은빛 날개를 퍼덕이며 펼친 오른쪽에 선명했던 못자국중지와 약지를 벌린 각인에 혀를 끼우고왼손에 들었던 횃불로 바람의 꼬리에 불을 붙이자메케하게 피어난 악성 루머들사람들은 스스로 검은 상자에 매달린 중독성의 쇠사슬을 목에 걸었지자동조절 되지 않는 나의 몸에서도 고열이 일었어통증으로 웅크린 배를 독수리의 발톱이 휘젓자거친 호흡으로 들썩이던 종잇장은 찢겨져쏟아진 폐를 독수리가 인공호흡기처럼 입에 물고 숲을 흡입했어노을이 빠져나간 얼굴에서 금세 어둠이 흘러나와달의 내장을 꺼낸 굴뚝이 목에다 뱀처럼 구름.. 2022. 9. 28.
박은석 시인 / 탕제원 외 5편 박은석 시인 / 탕제원 탕제원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릎의 냄새가 난다 용수철 같은 고양이의 무릎이 풀어지고 있던 탕제원 약탕기 속 할머니는 자주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냈었다 할머니의 무릎에는 몇 십 마리의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가늘고 예민한 수염을 달인 마지막 약, 잘못 쓰면 고양이는 담을 넘어 달아난다 밤이면 살금살금, 앙갚음이 무서웠다. 고양이를 쓰다듬듯 할머니의 무릎을 만졌다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할머니들이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빗줄기가 들어간 무릎의 통증 등에 없힌 밭고랑 한가득 들어 있는 무릎 탕제원 오후는 화투패가 섞인다. 화투패는 오래 달일 수가 없다 약탕기 안에 판 판의 끗발들이 성급하게 달여지고 있지만 가끔은 불법의 처방이 멱살을 잡기도 한다 약탕기 속엔 팔짝팔짝 뛰던 .. 2022. 9. 28.
양은숙 시인 / 미늘* 외 2편 양은숙 시인 / 미늘*- 시간의 얼굴 4 잠시 뒤 경련이 올 거다등이 부르르 떨리고 나서, 둥근 눈이 맑아졌다무호흡,입천장을 꿰뚫린 내 지느러미는 조용하다움직일수록 더 깊이미늘은 살을 뚫는다 어쩌면 생은 미늘이었는지모른다첨예한 바늘을 휘어지게 입에 물고역방향의 질식으로 이끌리는 알 수 없는이 물속의 유영遊泳마지막 숨까지 함께하는 건 통각痛覺이다무호흡, 시간은 멎고마알갛게 드러나는 물속의 풍경마블링으로 울렁이는 물살찬란한 물풀과 반짝이는 치어들물 위를 떠가는 상현달 같은 나뭇잎물살을 저으며 떠다니는 저, 위, 빨간, 발바닥 오리들...내가 살던 물의 세상이 언제 이토록 아름다웠나퍼덕, 숨 뒤틀리고아가미까지 힘겹게 전해오는 경련과 경련 사이는평생의 풍경보다 길고도 깊다 *미늘: 낚싯바늘 끝의 역방향 갈고리 .. 2022. 9. 28.
허은희 시인 / 선택적 함구 외 1편 허은희 시인 / 선택적 함구 검은 복면검은 장갑검은 눈동자 숨을벗는 시간몸에 두른 주름의 움직임 소리를 깨우는 건 반칙이야유리조각을 밟지 마오역에 기운 가지를 흔들지 마환생은 없고 환각만 있음을 기억해 입 다문 창문귀 잘린 의자얼굴 없는 바닥 몸을 두른 금기가투명해지는빈방 허은희 시인 / 반 넓이어딘가에 당신과 닿으려다 놓친 곳 눈꺼풀 밖으로 출발한 막차와하루를 밀봉하고 가는 셔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므로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재생 불가한 어제의 햇빛 너머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단서들 맞은편의 바람이 흔들고 가는나무의 무수한 발자국들 숲이 되고도 남았을당신 등 뒤를 서성이다 쌓인 발자국, 먼지들의 국가 그러므로반, 형용할 수 없으므로 무구하고구원의 바깥을 돌아 첫 차가 올 동안의 거리, 우린 .. 2022. 9. 28.
이재연 시인 / 순례자 외 3편 이재연 시인 / 순례자 입 속에서 얼음을 녹인다어느 때에 두 발이 남루해질 것이라고돌이 쌓여 있는 좁은 길을 밤이 지나간다 새벽 불 켜진 상점을 찾는 일일지라도너와는 입장이 달라매번 입장이 달라 연휴에도 흐린 유리창 밖에서푸른 꽃이 피고 번지는데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어디에서도 흔한 포유류는 말을 하지 않는다주름이 많은 어미를 바라보며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그것이 생활 속에 남아 있어잔물이 불어나는 물가에 서 있다 목이 없는 꽃병 속의 물을 갈아주며내가 단지 건물 속에 갇혀 있다면건물이 우리에게 다정히 속삭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다하늘도 알고 있다홀로 자고 일어난 노인도 알고 있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조상의 이름을 새긴 돌 위에 사월의 눈 내린다검불 속에서 머위 잎이 쑥 올라온다 새벽별.. 2022. 9. 28.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제54화)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제54화) 스승 신부들에 대한 감사와 사랑 가톨릭신문 2022-09-18 [제3311호, 12면] 2022. 9. 28.
[Buon pranzo!] 16. 성 요한 바오로 6세 교황 ① [부온 프란조!] 16. 성 요한 바오로 6세 교황 ① (제262대, 1897. 9. 26~1978. 8. 6) 밀라노대교구장 시절 ‘노동자들의 대주교’라는 별명을 얻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09.25 발행 [1679호] ▲ 1960년 밀라노대교구 대교구장 대주교로 재임할 당시 미국 인디애나 주 노틀담대학 총장인 시어도어 헤즈버그 신부를 만나는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 대주교(훗날의 교황 바오로 6세). 성 요한 바오로 6세 교황 ① (제262대, 1897. 9. 26~1978. 8.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끌고 마친 교황 1983년 10월, 로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내가 구입해야 될 서적 중에 하나가 바오로 6세 교황의 사도적 권고 「현대 복음선교」(Evangeli nuntiandi, 1975. .. 2022. 9. 28.
권용욱 시인 / 그날이 오늘 같다 외 1편 권용욱 시인 / 그날이 오늘 같다 숱한 겨울을 넘긴4월의 배반동 들녘이었다그를 만나고 오다마을 앞 뙈기 못자리 무논에 차를 세우고보글보글 물 부푸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그림자는 어둠에 녹아고원재로 돌아가고서쪽 낭산(狼山)이 남산 옆구리에 기댈 때 하현의 틈을 죄는 초승달 같은보불로에 걸터앉은 벚꽃잎 같은낮은 개구리 소리 들었다 솟을대문 따라 나오던 파초 소리담장 불쑥대던 진순이의 흰 꼬리 소리 마당과 장독대와 금낭화와치미와 막새기와 골지붕은 여기 남고이제 사람은 현곡 아파트로 들어가야겠다는대청마루의 마른 소리도 들렸다 그도 늘 거기 서 있었을 것이다억머구리 와글와글 밤새 들끓는 여름날도벼 이삭 곱습곱슬 세는 가을밤에도 외통 같은 시 한 수 만나러'물소리 천사'처럼 서 있었으리라 '온유'와'비발디풍으로 오.. 2022. 9. 28.
김순옥 시인 / 질감 외 1편 김순옥 시인 / 질감 방을 빼라는 집주인의 목소리가 뜨거워엉뚱한 방에 들어가 누워보아요문지방에 끼인 돌멩이가 으스러져요감긴 눈을 씹었어요 생선 꼬리라도 주세요돌멩이가 입안에서 굴러다녀요미안해요 뱉을 수가 없어요입 깊숙이 밀어 넣어 볼까요? 늙은 복숭아 껍질에 돋은 거웃이천 일 동안 타고 있대요꽃을 달고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노랗게 곪아가는 눈저만치나는 엄마보다 더 늙었고낯익은 젊은 여자 하나생뚱맞은 얼굴로 거울을 빠져나가요 불 꺼진 방 아랫목에 우두커니앉아 있어요 -2017년 《국제신문》신춘문예 당선시 김순옥 시인 / 윤달 내 안의 날씨가 너무 어려워 중얼거리는 말을 모아 쌓으면 기다란 목이 되는목에 쌓아 올린 새봄을 읽느라 기린은오늘도 지각이다 빵집 출입문에 喪中이라고 쓰인 흰 종이가 붙었다우유를 .. 2022. 9. 28.
배창환 시인 / 시인의 비명(碑銘) 외 1편 배창환 시인 / 시인의 비명(碑銘)​ 언제나 사랑에 굶주렸으되목마름 끝내 채우지 못하였네 평생 막걸리를 좋아했고촌놈을 자랑으로 살아온 사람,아이들을 스승처럼 섬겼으며흙을 시의 벗으로 삼았네​사람들아, 행여 그가 여길 뜨거든그 이름 허공에 묻지 말고그가 즐겨 다니던 길 위에 세우라 하여 동행할 벗이 없더라도맛있는 막걸리나 마시며이 땅 어디 어디 실컷 떠돌게 하라​ ​배창환 시인 / 가야산 이야기​ 높은 산 먼 길 덕에대구서 가장 늦게 바람이 불어와아직은 산비탈에 칡덩굴이 녹음을 덮고그 깊숙한 가슴 안쪽에 목장도 몇 남겨둔 청정 지역성주 가천 금수 가야산 북사면 신계 용사 무학 골짝에여름엔 발 디딜 자리 없이 빽빽한 장터를 이룬다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몰려와서찬물에 발 넣고 고기 몇 근 구워 먹고먹다가 토하.. 2022. 9. 28.
백은선 시인 / 자매 외 1편 백은선 시인 / 자매 색색의 조명등이 나에게 여러 개의 그림자를 달아준다 우리 자매는 몇 가지 놀이를 가지고 있다어떤 날엔 촛농 같은 쿠키를 집어 먹으며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로 한다 맹세를 할 때는 맹세만을 생각한다 불어나는 혓바닥처럼식탁 밑에 쭈그리고 앉아우리는 다툼을 꾸며낸다너는 이제 영영 네가 되어야만 할 거야! 거품이 터지는 소리물속에 잠겨 있을 때내가 흉내내는 동물의 울음소리들빛은 내 몸을 구석 투성이로 만든다 언니는 오래도록 식탁 아래 남아헤아린다 접시를 쥐고하나두울 하나 다시 하나 가느다란 빛이 두 귀를 관통한다 초식동물들의 몸 안에 새겨진어두운 울음을 생각하고 싶다가능하다면 리본처럼 풀어지는 혀를훔치고 싶다 백은선 시인 / 영원 흰 배가 묶여 있는 선착장을 생각해 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 2022.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