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근대)937 이병기 시인 / 도중점경(途中點景) 외 3편 이병기 시인 / 도중점경(途中點景) 고랑 다랑 배미 살얼음 끼어 있고 퍼런 보리밭에 까마귀 날아 앉고 들 너머 먼 산(山)머리론 아지랑이 잦았다 산(山)은 산(山)이로되 돌이나 흙만 남아 소쩍새 한 마리 깃들일 곳이 없고 갓 나는 잔솔 포기는 그 언제나 자랄는고 나아가고 보면 점점 트이.. 2020. 2. 6. 박목월 시인 / 눈썹 A 외 4편 박목월 시인 / 눈썹 A 불안하고 겁에 질린 짐승들의 검은 눈은 우리의 것이다. 타오르는 불길에 깃드는 검은 그늘을 우리는 무직한 눈썹으로 태연하게 놀리고 있을 뿐이다. 짐승들의 태고의 밤보다 어둡고 불안스러운 검은 눈은 우리의 것이다. 눈썹이 없는 짐승들은 겁에 질린 검은 눈을 .. 2020. 2. 5. 이병기 시인 / 냉이꽃 외 3편 이병기 시인 / 냉이꽃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 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시(詩)도 읊고 싶고나 지난 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太陽)이 그대로라면 .. 2020. 2. 5. 이상화 시인 / 청량 세계 외 3편 이상화 시인 / 청량 세계 아침이다. 여름이 웃는다. 한 해 가운데서 가장 힘차게 사는답게 사노라고 꽃불 같은 그 얼굴로 선잠 깬 눈들을 부시게 하면서 조선이란 나라에도 여름이 웃는다. 오 사람아! 변화를 따르기엔 우리의 촉각이 너무도 둔하고 약함을 모르고 사라지기만 하고 있다. .. 2020. 2. 5. 박목월 시인 / 노대(露臺)에서 외 3편 박목월 시인 / 노대(露臺)에서 발코니에서 건너다 보는 숲에 밤의 나무는 적막하다. 밑둥까지 볼 수 있는 알몸의 밤의 나무는 고독하다. 밤일수록 떠 보이는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 앙상한 팔과 마른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젓는 나무. 죽음보다 깊이 잠든 수녀원의 눈도 내리지 않는, 냉.. 2020. 2. 4. 이병기 시인 / 금강(錦江) 외 3편 이병기 시인 / 금강(錦江) 산 곱고 물도 고운 우리나라 이 강산(江山) 오대(五大) 장강(長江)의 금강(錦江)이 하나로서 비단결 같은 이 강(江)이 이 어름에 비껴 있다 삼국(三國)을 통일하고 뽐내던 신라(新羅) 끝에 왕건(王建) 태조(太祖)도 영웅은 영웅이지만 개태(開泰)에 원찰(願刹)을 두.. 2020. 2. 4. 이상화 시인 / 조소 외 3편 이상화 시인 / 조소 두터운 이불을, 포개 덮어도, 아직 추운, 이 겨울 밤에, 언 길을 밟고 가는 장돌림, 봇짐 장수, 재 너머 마을, 저자 보러, 중얼거리며, 헐떡이는 숨결이, 아― 나를 보고, 나를 비웃으며 지난다. 월간 『開闢(개벽)』 1925. 1 이상화 시인 / 지구 흑점의 노래 영영 변하지 않.. 2020. 2. 4. 박목월 시인 / 구황룡(九黃龍) 외 4편 박목월 시인 / 구황룡(九黃龍) 날가지에 오붓한 진달래꽃을 구황룡 산길에 금실 아지랑이 ―풀섶 아래 꿈꾸는 옹달샘 ―화류장롱 안쪽에 호장저고리 ―새색시 속눈썹에 어리는 이슬 날가지에 오붓한 꿈이 피는 구황룡 산길에 은실 아지랑이 산도화(山桃花), 영웅출판사, 1955 박목월 시인 .. 2020. 2. 3. 이병기 시인 / 광릉(光陵) 외 3편 이병기 시인 / 광릉(光陵) 깊고 깊은 뫼이 숲도 그리 그윽하다 빤히 트인 곳이 저 아니 광릉(光陵)인가 허울한 양마석(羊馬石) 머리 지는 해는 잦았다 외롭고 쓸쓸하기 영월(寧越)과 어떠하리 해마다 봄이 오면 자규(子規)야 울지마는 오르고 눈물을 지을 누대(樓臺) 하나 없도다 가람시조.. 2020. 2. 3. 이상화 시인 / 이중의 사망 외 3편 이상화 시인 / 이중의 사망 ― 가서 못 오는 박태원의 애틋한 영혼에게 바침 죽음일다! 성낸 해가 이빨을 갈고 입술은 붉으락 푸르락 소리 없이 훌쩍이며 유린당한 계집같이 검은 무릎에 곤두치고 죽음일다. 만종의 소리에 마구를 그리워하는 소― 피난민의 마음으로 보금자리를 찾는 새.. 2020. 2. 3. 박목월 시인 / 감람나무 외 4편 박목월 시인 / 감람나무 어린 감람나무여. 주께서 몸소 거닐으신 갈릴리 축복받은 땅에 주의 발자국이 살아 있는 바닷가으로 안수를 받으려고 고개를 숙인 나무여 세상에는 감람나무보다 더 많은 어린이들이 자라고 있지만 그들의 뒤통수에 머물어 있는 주의 크고 따뜻한 손. 세상의 모.. 2020. 2. 2. 이병기 시인 / 갈보리 외 3편 이병기 시인 / 갈보리 옅은 구름 끼고 서리도 아니 내렸다 언덕 퍼런 숲에 새들은 지저귀고 그 밑엔 갈보리 잎이 소복소복 자란다 쓰일 듯 쓰일 듯하여 붓은 던질 수 없고 문장(文章)만으로 배는 채워지지 않는다 원컨대 오는 해마다 풍년(豊年)이나 드소서 가람문선, 신구문화사, 1966 이병.. 2020. 2. 2.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