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근대)937 김춘수 시인 / 갈대 외 2편 김춘수 시인 / 갈대 1 너는 슬픔의 따님인가 부다. 너의 두 눈은 눈물에 어리어 너의 시야(視野)는 흐리고 어둡다. 너는 맹목(盲目)이다. 면(免)할 수 없는 이 영겁(永劫)의 박모(薄暮)를 전후좌우(前後左右)로 몸을 흔들어 천치(天痴)처럼 울고 섰는 너. 고개 다수굿이 오직 느낄 수 있는 것, .. 2019. 9. 15. 김기림 시인 / 감상풍경(感傷風景) 외 2편 김기림 시인 / 감상풍경(感傷風景) 순아 이 들이 너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는 말을 차마 이 들의 귀에 들려 주지 말아라. 네 눈을 즐겁게 못하는 슬픈 벗 `포풀라'의 호릿한 몸짓은 오늘도 방천(防川)에서 떨고 있다. 가느다란 탄식(歎息)처럼…… 아침의 정적(靜寂)을 싸고 있는 무거운 안개.. 2019. 9. 14. 김규동 시인 / 바다의 기록(記錄) 외 2편 김규동 시인 / 바다의 기록(記錄) □ 파도(波濤) 소리 비끼인 구름 사이에서도 벌들이 속삭이는 한밤. 빈대와 모기와 바람 한점 들 리 없는 서울의 더위에 견디던 몸이 깊은 밤 파도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네살 짜리가 '아버지, 기차가 이렇게 쿵쿵거려서 어떻게 내려!' 천막밑까지 와.. 2019. 9. 14. 김춘수 시인 / 처용단장(處容斷章) 외 3편 김춘수 시인 / 처용단장(處容斷章) 제1부(第一部) 1의 1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 이따금 바람은 한려수도(閑麗水道)에서 불어오고 느릅나무 어린 잎들이 가늘게 몸을 흔들곤 하였다. 날이 저물자 내 늑골(肋骨)과 늑골(肋骨) 사이 홈을 파고 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2019. 9. 14. 김기림 시인 /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외 2편 김기림 시인 /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 바빌론으로 바빌론으로 작은 여자의 마음이 움직인다. 개나리의 얼굴이 여린 볕을 향할 때……. 바빌론으로 간 `미미'에게서 복숭아꽃 봉투가 날아왔다. 그날부터 아내의 마음은 시들어져 썼다가 찢어버린 편지만 쌓여 간다. 아내여, 작은 마음이여 .. 2019. 9. 13. 김규동 시인 / 두만강 외 3편 김규동 시인 / 두만강 얼음이 하도 단단하여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못 타고 썰매를 탔다 얼음장 위에 모닥불을 피워도 녹지 않는 겨울 강 밤이면 어둔 하늘에 몇 발의 총성이 울리고 강 건너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 멀리 들려왔다 우리 독립군은 이런 밤에 국경을 넘는다 했다 때로 가슴을 .. 2019. 9. 13. 김춘수 시인 / 쥐 오줌 풀 외 3편 김춘수 시인 / 쥐 오줌 풀 하느님, 나보다 먼저 가신 하느님, 오늘 해질녘 다시 한 번 눈 떴다 눈 감는 하느님, 저만치 신발 두짝 가지런히 벗어놓고 어쩌노 멱감은 까치처럼 맨발로 울고 가신 하느님, 그 하느님 김춘수 시인 / 처용(處容) 인간(人間)들 속에서 인간(人間)들에 밟히며 잠을 .. 2019. 9. 13. 신동엽 시인 / 진이(眞伊)의 체온(體溫) 외 3편 신동엽 시인 / 진이(眞伊)의 체온(體溫) 싸락눈이 날리다 멎은 일요일(日曜日). 북한산성(北漢山城)길 돌 틈에 피어난 들 국화(菊花) 한송일 구경하고 오다가, 샘터에서 살얼음을 쪼개고 물을 마시는데 눈동자가, 그 깊고 먼 눈동자가 이 찬 겨울 천지 사이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더라. 또 .. 2019. 9. 12. 김규동 시인 / 눈 나리는 밤의 시(詩) 외 2편 김규동 시인 / 눈 나리는 밤의 시(詩) 고독(孤獨) 속에서는 낡은 서적(書籍)이 풍기던 곰팡이 내음새가 풍겼다. 벗은 '타이피스트' 아가씨처럼 경쾌(輕快)한 솜씨로 무한(無限)한 시(詩)를 써갔다. 먼 시간(時間)의 경과(經過) 뒤에 오는 피곤(疲困)과 같은 애수(哀愁). 부두(埠頭)가에서는 지.. 2019. 9. 12. 김춘수 시인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외 4편 김춘수 시인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數千數萬)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 2019. 9. 12. 신동엽 시인 / 정본(定本) 문화사대계(文化史大系) 외 1편 신동엽 시인 / 정본(定本) 문화사대계(文化史大系) 오랜 빙하기(氷河期)의 얼음장을 뚫고 연연히 목숨 이어 그 거룩한 씨를 몸지녀 오느라고 뱀은 도사리는 긴 짐승 냉혈(冷血)이 좋아져야 했던 것이다. 몇만년 날이 풀리고, 흙을 구경한 파충(爬蟲)들은 구석진 한지에서 풀려 나온 털가진 .. 2019. 9. 11. 김규동 시인 / 나비와 광장(廣場) 외 3편 김규동 시인 / 나비와 광장(廣場) 현기증(眩氣症) 나는 활주로(滑走路)의 최후(最後)의 절정(絶頂)에서 흰 나비는 돌진(突進)의 방향(方向)을 잊어버리고 피묻은 육체(肉體)의 파편(破片)들을 굽어 본다. 기계(機械)처럼 작열(灼熱)한 작은 심장(心臟)을 축일 한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虛妄).. 2019. 9. 11. 이전 1 ··· 46 47 48 49 50 51 52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