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근대)937 김춘수 시인 / 겨울밤의 꿈 외 2편 김춘수 시인 / 겨울밤의 꿈 저녁 한동안 가난한 시민(市民)들의 사로가 피를 데워 주고 밥상머리에 된장찌개도 데워 주고 아버지가 식후(食後)에 석간(夕刊)을 읽는 동안 아들이 식후(食後)에 이웃집 라디오를 엿듣는 동안 연탄(煉炭)가스는 가만가만히 쥐라기의 지층(地層)으로 내려간다 .. 2019. 9. 19. 김기림 시인 / 바다 외 2편 김기림 시인 / 바다 바다 너는 벙어리처럼 점잖기도 하다. 소낙비가 당황히 구르고 지나갈 적에도 너는 놀라서 서두르는 일이 없다. 사공(沙工)들은 산(山)처럼 큰 그들의 설움을랑 네 뼈ㄷ합 속에 담아 두려하여 해만(海灣)을 열고 바삐 나가더라. 사람들은 너를 운명(運命)이라 부른다. .. 2019. 9. 18. 김규동 시인 / 유리씨즈 외 3편 김규동 시인 / 유리씨즈 성벽(城壁)처럼 드높은 하얀 벽(壁)에 펑하니 뚫려진 구형(矩形)의 창(窓)―창(窓)아래 앉은 사람들은 할일 없이 무슨 맛인지 모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날. 1955년(年)의 마감날― 하늘은 깊은 안개 모양으로 흐리고 검은 구름이 머루넝쿨처럼 엉켜져 있었다. 은.. 2019. 9. 18. 김춘수 시인 / 무구(無垢)한 그들의 죽음과 나의 고독(孤獨) 외 3편 김춘수 시인 / 무구(無垢)한 그들의 죽음과 나의 고독(孤獨) 1 스스로도 모르는 어떤 그날에 죄(罪)는 지었습니까? 우러러도 우러러도 보이지 않는 치솟은 그 절정(絶頂)에서 누가 그들을 던졌습니까? 그 때부텁니다 무수한 아픔들이 커다란 하나의 아픔이 되어 번져간 것은― 2 어찌 아픔.. 2019. 9. 18. 김기림 시인 / 두견새 외 3편 김기림 시인 / 두견새 어머니와 누이들 모르는 아닌 밤중 역사와 세계의 눈을 가려 가면서 큰 일을 저질렀느니라 별과 천사들 굽어보며 소름쳤느니라 뾰고 흰 손길을 끌려 송이송이 꽃봉오리 검은 화차에 실려 구름과 수풀과 바다를 돌아 몰려가던 날 아무도 말려 주는 이 없어 어머니만 .. 2019. 9. 17. 김규동 시인 / 어머님전(前) 상서(上書) 외 3편 김규동 시인 / 어머님전(前) 상서(上書) 솔개 한 마리 나즈막히 상공을 돌거든 어린날의 모습같이 그가 지금 조그맣게 어딘가 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세요 움직이는 그림자는 영원에 가려 돌아오지 않지만 달빛에 묻어서라도 그 목소리는 돌아오는 것이라 여겨주세요 이제 생각하면 운.. 2019. 9. 17. 김춘수 시인 / 죽음 외 3편 김춘수 시인 / 죽음 1 죽음은 갈 것이다. 어딘가 거기 초록(草綠)의 샘터에 빛 뿌리며 서있는 황금(黃金)의 나무…… 죽음은 갈 것이다. 바람도 나무도 잠든 고요한 한밤에 죽음이 가고 있는 경허(敬허)한 발소리를 너는 들을 것이다. 2 죽음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가을 어느 날 네가 걷고 .. 2019. 9. 17. 김기림 시인 / 기차(汽車) 외 3편 김기림 시인 / 기차(汽車) 레일을 쫓아가는 기차는 풍경에 대하여도 파랑빛의 로맨티시즘에 대하여도 지극히 냉담하도록 가르쳤나 보다. 그의 끝없는 여수를 감추기 위하여 그는 그 붉은 정열의 가마 위에 검은 강철의 조끼를 입는다. 내가 식당의 메뉴 뒷등에 (나로 하여금 저 바닷가에.. 2019. 9. 16. 김규동 시인 / 시인(詩人)의 검(劍) 외 3편 김규동 시인 / 시인(詩人)의 검(劍)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요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 ―헤겔 꽃을 흔들고 날아가는 새의 날음을 보기 위해 눈을 감을 것은 없다 오늘 살면 내일 살 일이 태산 같은 삶을 심장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어둠의 불빛 아래를 헤매일 것은 없다 괭이를 잡은 .. 2019. 9. 16. 김춘수 시인 / 나목(裸木)과 시(詩) 외 3편 김춘수 시인 / 나목(裸木)과 시(詩) 1 시(詩)를 잉태(孕胎)한 언어(言語)는 피었다 지는 꽃들의 뜻을 든든한 대지(大地)처럼 제 품에 그대로 안을 수가 있을까, 시(詩)를 잉태(孕胎)한 언어(言語)는 겨울의 설레이는 가지 끝에 설레이며 있는 것이 아닐까, 일진(一陣)의 바람에도 민감(敏感)한 .. 2019. 9. 16. 김기림 시인 / 공동묘지 외 2편 김기림 시인 / 공동묘지 일요일 아침마다 양지 바닥에는 무덤들이 버섯처럼 일제히 돋아난다. 상여는 늘 거리를 돌아다보면서 언덕으로 끌려 올라가군 하였다. 아무 무덤도 입을 벌리지 않도록 봉해 버렸건만 묵시록의 나팔 소리를 기다리는가 보아서 바람 소리에조차 모두들 귀를 쭝그.. 2019. 9. 15. 김규동 시인 /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외 3편 김규동 시인 / 북에서 온 어머님 편지 꿈에 네가 왔더라 스물세 살 때 훌쩍 떠난 네가 마흔일곱 살 나그네 되어 네가 왔더라 살아 생전에 만나라도 보았으면 허구한 날 근심만 하던 네가 왔더라 너는 울기만 하더라 내 무릎에 머리를 묻고 한마디 말도 없이 어린애처럼 그저 울기만 하더라.. 2019. 9. 15.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