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근대)937

한용운 시인 / 정천한해 한용운 시인 / 정천한해(情天恨海)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소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恨) 바다만 못하리라. 높고 높은 정(情) 하늘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恨) 바다가 병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 2019. 7. 24.
조지훈 시인 / 낙화 외 3편 조지훈 시인 / 낙화 1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2019. 7. 24.
임화 시인 / 가을 바람 외 2편 임화 시인 / 가을 바람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데, 무어라고 네 마음은 종이 풍지처럼 떨고 있니? 나는 서글프구나! 해맑은 유리창아! 그렇게 단단하고 차디찬 네 몸, 어느 구석에 우리 누나처럼 슬픈 마음이 들어 있니? 참말로 누가 오라고나 했나?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달아와서, 그리 .. 2019. 7. 23.
정지용 시인 / 고향 외 3편 정지용 시인 /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2019. 7. 23.
이형기 시인 / 낙화 외 1편 이형기 시인 /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2019. 7. 23.
백석 시인 / 함주시초(咸州詩抄) 외 1편 백석 시인 / 함주시초(咸州詩抄) □ 북관(北關) 명태(明太) 창란젓에 고추무거리에 막 칼질한 무를 비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숙히 여진(女眞)의 살 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 2019. 7. 22.
이육사 시인 / 자야곡 이육사 시인 / 자야곡(子夜曲)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위에 이끼만 푸르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들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 바람 불고 .. 2019. 7. 22.
이상 시인 / 가정 외 1편 이상 시인 / 가정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 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 2019. 7. 22.
백석 시인 / 추야일경(秋夜一景) 외 2편 백석 시인 / 추야일경(秋夜一景) 닭이 두 홰나 울었는데 안방 큰방은 홰즛하니 당등을 하고 인간들은 모두 웅성웅성 깨어 있어서들 오가리며 석박디를 썰고 생강에 파에 청각에 마늘을 다지고 시래기를 삶는 훈훈한 방안에는 양념 내음새가 싱싱도 하다 밖에는 어디서 물새가 우는데 토.. 2019. 7. 21.
윤동주 시인 / 간 외 3편 윤동주 시인 / 간(肝)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려 간(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 2019. 7. 21.
유치환 시인 / 선한 나무 유치환 시인 / 선한 나무 내 언제고 지나치는 길가에 한 그루 남아 선 노송(老松) 있어 바람 있음을 조금도 깨달을 수 없는 날씨에도 아무렇게나 뻗어 높이 치어든 그 검은 가지는 추추히 탄식하듯 울고 있어, 내 항상 그 아래 한때를 머물러 아득히 생각을 그 소리 따라 천애(天涯)에 노닐.. 2019. 7. 21.
백석 시인 / 조당에서 외 2편 백석 시인 / 조당에서 나는 지나(支那)나라 사람들과 같이 목욕을 한다 무슨 은(殷)이며 상(商)이며 월(越)이며 하는 나라 사람들의 후손들과 같이 한 물통 안에 들어 목욕을 한다 서로 나라가 다른 사람인데 다들 쪽 발가벗고 같이 물에 몸을 녹이고 있는 것은 대대로 조상도 서로 모르고 .. 2019.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