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2/09342

심지아 시인 / 정물화 도둑 외 1편 심지아 시인 / 정물화 도둑 봉제선은 말끔할 때조차 기괴하다.이브의 매끄러운 옆구리에서 사과가 쏟아진다. 떨어지는 순간, 사과는사과를 뱉어내는 사과처럼뱀이 된다. 뒤죽박죽이야 세계는.붓으로 뱀을 그리는 어린 세잔의 이목구비는 아직가지런하다. 캔버스 위에 붙였다 떼었다 한다.한 개 혹은 여러 개의 사과로 질문인 얼굴을 완성할 수 있어?사과 꼭지를 도려내는 칼끝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들 나의 밤은 머리가 많은 뱀처럼 베개가 부족해.불행을 조제하는 테이블에서알약들의 테두리를 애무하며밤의 넓은 목구멍을 바라본다. 베어 문 사과처럼손등만이 남아 있는 시간 사과의 반쪽은 사과가 도달한 옆얼굴인가.부족한 손등은 시간의 완전한 테두리인가. 절반의 사과는 보다 짙은 냄새한 개는 부족하고 반쪽은 충분해.못된 쌍둥이처럼 이상하.. 2022. 9. 30.
성향숙 시인 / 꽃아, 문 열어라 외 1편 성향숙 시인 / 꽃아, 문 열어라 몇 개의 산맥을 넘고 넘어야흰 꽃이 피 빛이 되나은하수를 몇 번 건너야할머니 앉았다간 자리에 아기가 방긋 웃나얼마나 기다려야증조할머니의 흰 젖을 물고엄마가 마늘 씹는 웅녀 되나웅녀가 두 눈 반짝이는 곰이 되나얼마나 울어야 향기의 족적을 따라오래오래 골똘하다보면녹차나무에 붉은 동백꽃 핀다는데 작설차에 동백향 풍겼다 아기 동백 잎 이미 굳은 발바닥이다동백나무 숲에 밤이 오면찬별이 발바닥 밑에 쏟아지고늙은 엄마 등 구부려 별빛 쓸어 모은다나무 가지 사이 동박새 품고 있다 쪽진 머리 오래된 여자들의 발바닥가지 끝마다 피 빛 꽃 힘껏 밀어올린다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 시집, 에서 성향숙 시인 / 외면의 실루엣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돌리는 것은곁눈질로 나를 훔쳐보겠다는 것입은 일직.. 2022. 9. 30.
배홍배 시인 / 빗방울 전주곡 외 1편 배홍배 시인 / 빗방울 전주곡-쇼팽 프렐류드 커피잔 위로 쏟아지는 쌉쌀한 빗소리,소리를 향해 빗방울들 날아간다날아가는 품새로 되 던져지는오각형의 음의 덩어리, 보인다고요함과차가움과슬픔과외로음, 그리고 노스탤지어 보인다거꾸로 흐르는 오늘의 가장자리자정으로 가득 찬 시간한 번도 통화를 해본 적이 없어부패한 전화기가나의 귓속에 검은 상처를 냈을 것이다사람으로 넘쳐나는 몸뚱이 끝에서상처보다 깊게 자라는 고양이 정신과물물 교환된 나의 전생,그곳에다 버린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하루에서날카로운 빗방울은 뿌려진다, 다시 그리운 듯 - 음악 에세이 『classic 명곡 205.에서 배홍배 시인 / 모노 LP 음반 한 바퀴 돌면 핏줄 하나가 풀려나갔다칭칭 감긴 몸뚱이가 풀리기엔현기증이 더 필요했나튀는 바늘 끝에서 하늘.. 2022. 9. 30.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185. 복음과 사회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185. 복음과 사회교리 (「간추린 사회교리」 193항) 우리는 누군가의 책임과 희생 위에 살아간다 가톨릭신문 2022-09-25 [제3311호, 18면] 공동체 지탱하는 힘 ‘상호 희생’ 공동의 집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 기억해야 말레이시아 클랑강 쓰레기 더미에서 새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베드로: 신부님, 저번에 과도한 육식, 남겨지고 버려지는 음식에 대해 많이 반성했습니다. 음식물을 함부로 버리고, 욕심에 따라 음식을 대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음을 알게 됐어요. 라파엘: 가축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게 가슴 아팠어요. 미카엘: 모든 피조물이 서로 연관을 맺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에도 공감이 갔어요. 바오로: 제 소원만 이뤄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 2022. 9. 30.
백우선 시인 / 훈暈. 2 외 1편 백우선 시인 / 훈暈. 2 그의 화살로 내가몰래 쏘고 쏜 과녁인 나는고슴도치전신 심장의 화살투성이그 끝끝의 깃털로그의 하늘을빙빙 돌며 납니다 *훈暈 : 햇무리나 달무리와 같이 중심을 향하여 고리처럼 둘린 빛의 테. 백우선 시인 / 낙지 머리에 든 먹물은삶아도 쉽게 굳지 않는다붓 삼아 찍어 쓸손발가락이 토막토막 잘려입속으로 사라져도먹물은 붓을 기다린다일 초라도 더 버틴다먹이 아니라먹이가 되고 말더라도글이 되고 싶은 것은 이런매운 구석이 있다 백우선 시인 / 마부의 꽃 몽골 테를지에서 말을 탄 젊은 마부는갑자기 몸을 땅으로 깊이 굽혀노랑꽃을 꺾어 여인에게 웃으며 건넸다한 여인과 내가 탄 말 둘의 고삐를 잡고앞서 가다가였다.잠시 뒤에는 또 그렇게 하얀 꽃을 꺾어나한테도 주었다. 나는 그 꽃을나란히 가는 그 여.. 2022. 9. 30.
박병수 시인 / 사막을 건넌 나비 외 1편 박병수 시인 / 사막을 건넌 나비 돌아보니 안개 대신 모래를 흘리면서 바람이 바람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액막이 무녀가 다녀간 뒤 반세기 전의 내가 반세기 후의 무릎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었다 무너진 집터에는 흰개미가 갉아먹은 문설주와 서까래, 폐허에 머무르다 성체가 된 나비는 꽃이 판 구덩이로 돌아왔다 혼몽을 이마에 묶으면서 명부를 찾는 동안 여름에 진 꽃의 저주가 사막이 되지는 않았지만 바닥의 얼룩을 닦아내자 사막은 시작되었다 허물어진 벽뒤에서 어금니의 말이 모래를 남기고 사라진다 무덤 이전, 나비 이전의 나의 손이 낙타를 끌고 왔다 꿇은 자의 무릎은 목을 조여도 무릎이었다 안개가 부족해서 하늘의 소리를 듣는 새벽, 모래알 하나마다 천 개의 유령이 살고 있다 사막을 벗어나려 다시 사막을 걸어간다 모래를 .. 2022.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