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근대)937 고원 시인 / 지하철도 외 1편 고원 시인 / 지하철도 고전이 쌓여 있는 탑이며 육중한 문명의 체중에 깔린 채 도시의 동맥은 돌아간다. 굴 속으로 가는 시민들은 굴복의 역사를 상상하지 않는다. 기차는 윤전기에 걸린 신문지를 펴는 듯. 여기 서울사람 하나 앉아서 팽창한 `튜브' 속의 고향을 생각하고, `웨이 아우트'―.. 2020. 2. 26. 김상옥 시인 / 불모(不毛)의 풀 외 2편 김상옥 시인 / 불모(不毛)의 풀 늙은 서인(庶人) 두자미(杜子美), 징용으로 끌려온 그 변방(邊方)에도 풀은 철따라 푸르렀다. 고향 강남(江南)엔 담 넘어 꽃잎 날리고, 부황난 처자(妻子) 눈앞에 아른거렸나니 이룬 것 없이 나도 그만큼 찌들었는가 서울은 가을, 불모(不毛)의 풀만 무성하다... 2020. 2. 25. 서정주 시인 / 조국 외 4편 서정주 시인 / 조국 누군가 한 그릇의 옛날 냉수를 조심조심 떠받들고 걸어오고 계시는 이.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받쳐 들고 오시는 이. 구름 머흐는 육자배기의 영원을, 세계의 가장 큰 고요 속을, 차라리 끼니도 아니 드시고 끊임없이 떠받들고 걸어오고만 계시는 이. 누군가. 이미 형상.. 2020. 2. 25. 고원 시인 / 오후의 미소 외 2편 고원 시인 / 오후의 미소 ―`아폴로'의 피신(避身)― ―`피에로'- ―`카이로'- 병사들이 손을 흔들며 지중해로 떠나는 저녁때부터 부슬비는 내리기 시작했고, 실내악처럼 지금 비둘기가 내내 비를 맞는다. 짙은 회색에 젖은 음향과 짙은 회색에 젖은 오후의 미소. 과일이 향긋한 식탁에서는.. 2020. 2. 25. 김상옥 시인 / 병상(病床) 외 2편 김상옥 시인 / 병상(病床) 내 어찌 조심 없이 세상을 살았기로 뜯기고 할퀴어 왼몸에 상처(傷處)거니 이 위에 병을 마련해 날로 이리 지든다 잦아진 촛불인 양 숨소리도 가냘프고 외로 돌아누워 눈이 띈지 감겼는지 창(窓)밖에 저무는 빛이 죽음같이 고와라 초적(草笛), 수향서헌, 1947 김상.. 2020. 2. 24. 서정주 시인 / 우리 데이트는 외 4편 서정주 시인 / 우리 데이트는 햇볕 아늑하고 영원도 잘 보이는 날 우리 데이트는 인젠 이렇게 해야지― 내가 어느 절간에 가 불공을 하면 그대는 그 어디 돌탑에 기대어 한 낮잠 잘 주무시고, 그대 좋은 낮잠의 상으로 나는 내 금팔찌나 한 짝 그대 자는 가슴 위에 벗어서 얹어 놓고, 그리.. 2020. 2. 24. 고원 시인 / 씨앗 외 2편 고원 시인 / 씨앗 아늑한 자리 거무스름 점이 돌고, 점이 구르는 대로 도도록 도도록 씨앗의 알이 번진다. 점이 번쩍 눈을 뜰 때 물너울에 뛰어드는 큰 산. 씨가 섬을 끌어안고 알은 바다를 들이켠다. 나그네 젖은 눈, 혜원출판사, 1989 고원 시인 / 안개 `란든탑' 쯤에서 상륙해 온 네 체질은 .. 2020. 2. 24. 김상옥 시인 / 방관자(傍觀者)의 노래 외 2편 김상옥 시인 / 방관자(傍觀者)의 노래 슬퍼라 가을이여! 서릿발에 서걱일 잎새는커녕, 진구렁 뿌리마저 썩더란 말가. 해마다 이맘 때면 살을 긁던 그날의 그 갈대숲, 한강(漢江)엔 인제 등뼈 굽은 피래미만 꼬리치나니. 슬퍼라 가을이여! 차라리 갈대처럼 살갗이라도 긁히고지고. 피가 배.. 2020. 2. 23. 서정주 시인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외 4편 서정주 시인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2020. 2. 23. 고원 시인 / 산 외 2편 고원 시인 / 산 멀다고들 하지만 언제나 가깝고 가까우면서도 멀리, 무척 멀리 깊고 굵은 선으로 사방을 잇는 산마음이 무겁다. 높은 자리 낮은 자리 가리지 않아 등성이나 마루턱을 맘놓고 굽이치고, 넘으면 그 너머 또 그 너머 하나가 백으로 겹겹이 뻗는 생각. 하늘과 땅을 같이 사는 산.. 2020. 2. 23. 김상옥 시인 / 더러는 마주친다 외 2편 김상옥 시인 / 더러는 마주친다 살아가노라면 더러는 마주친다. 세상에는 외나무다리도 많아, 아무리 피하려도 피할 수 없는― 이 다리 위서 너는 뒤따라온 모리꾼으로 마주치고, 또 젊으나 젊은 날 허리 꾸부린 내시(內侍)로도 마주친다. 이 다리 위서 너는 한 오리 미꾸라지로 마주치고,.. 2020. 2. 22. 서정주 시인 / 암스테르담에서 스피노자를 생각하며 외 4편 서정주 시인 / 암스테르담에서 스피노자를 생각하며 암스테르담에 와서 하루만 지내어 보면 하눌님은 여자인 것을, 여자라도 끝없이 뇌쇄(惱殺)하는 제일 이쁜 여자인 것을 할 수 없이 알 수가 있네. 하늘에다가 여러 가지 꽃빛의 여러 빛 별들을 못 두는 대신 이곳에 꽃피워 놓은 억천만 .. 2020. 2. 22. 이전 1 ··· 5 6 7 8 9 10 11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