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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937

황명 시인 / 분수(噴水) 5 외 2편 황명 시인 / 분수(噴水) 5 이 얼마나 우람한 풍경이냐 빗발치는 아우성의 대열 그 속에서 피는 꽃. 어쩌면 사랑이 철철 넘치는 절정(絶頂)의 기(旗). 살기(殺氣)에 찬 눈에는 핏발이 되어라 서러움에 겨운 눈에는 눈물의 화신(化身) 살아서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는 날렵한 입김을 주어라 이 .. 2020. 3. 1.
문병란 시인 / 겨울 산촌(山村) 외 1편 문병란 시인 / 겨울 산촌(山村) 사방이 막혀버렸다, 깊은 겨울 버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막혀버려다오. 겨울은 내 고향의 구들목에 미신이 들끓는 달, 지글지글 끓는 사랑방 아랫목에서 머슴들의 사랑이 무르익어가는 달, 화투장 위에도 밤새도록 흰 눈이여 쌓여다오. 겨울 산촌(山.. 2020. 2. 29.
황명 시인 / 백두파(白頭波) 외 2편 황명 시인 / 백두파(白頭波) 그것은 순수(純粹)라는 이름으로 추켜올린 교만한 예술가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어느 거칠은 화가의 손바닥 같은 것. 영원(永遠)을 치닫는 긴 여로(旅路)에서 스스로의 콧등을 할퀴고 나비 같은 몸매로 자맥질하는 저 무희(舞姬)의 뒷발꿈치. 밤이여 이제는 .. 2020. 2. 29.
김상옥 시인 / 추천 외 3편 김상옥 시인 / 추천 멀리 바라보면 사라질듯 다시 뵈고 휘날려 오가는 양 한 마리 호접(胡蝶)처럼 앞뒤 숲 푸른 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어룬 님 기다릴까 가비얍게 내려서서 포탄잠(簪) 빼어 물고 낭자 고쳐 찌른 담에 오지랖 다시 여미며 가쁜 숨을 쉬도다. 초적(草笛), 수향서헌, 1947 김.. 2020. 2. 29.
황명 시인 / 내 어느 날엔 외 2편 황명 시인 / 내 어느 날엔 내 어느 날엔 영랑(永郞)처럼 그렇게 힘없고 느릿한 핏줄이 되리 허지만, 아직은 강변에 나부끼는 억새마냥 사나운 몸짓으로 있어라 철따라 잎 피고, 꽃 지듯 삼월은 오고, 사월은 가고 실비단 하늘엔 종달이야 뜨겠지만 지금쯤 목이 쉬어 버린 그 처녀는 어디서 .. 2020. 2. 28.
김상옥 시인 / 입동(立冬) 외 2편 김상옥 시인 / 입동(立冬) 그대 바람같이 가 버리고 이내 이날로 소식(消息)도 없다 잎 진 가지 새로 머언 산(山)길이 트이고 새로 인 지붕들은 다소곤히 엎드리고 김장을 뽑은 밭이랑 검은 흙만 들났다 둘안을 깔린 낙엽(落葉) 아궁에 지피우고 현불에 지새우던 그날 밤을 생각느니 몹사리.. 2020. 2. 28.
서정주 시인 / 행진곡 외 2편 서정주 시인 / 행진곡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 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멀리 서 있는 바닷물.. 2020. 2. 28.
황명 시인 / 각서(覺書) 외 2편 황명 시인 / 각서(覺書) Ⅰ 너의 파아란 눈으로 저 우람한 하늘을 우러르면 너는 금시 한 그루 관목(灌木). 어이없이 밀리는 강물의 저류(低流)에 너는 한 알의 모래로 있을지도 모른다. 저러히도 산이, 들이, 강이 말이 없는 것은 그 오래고도 숱한 내력들을 상기 정리하지 못한 채, 준천재(.. 2020. 2. 27.
김상옥 시인 / 어느 가을 외 2편 김상옥 시인 / 어느 가을 언제나 이맘때면 담장에 수(繡)를 놓던 담쟁이넝쿨. 병(病)든 잎새들 그 넝쿨에 매달린 채 대롱거린다. 가로(街路)의 으능나무들 헤프게 흩뿌리던 그 황금(黃金)의 파편(破片), 이 또한 옛날 얘기. 지금은 때묻은 남루조각으로 앙상한 가지마다 추레하게 걸렸다. 멸.. 2020. 2. 27.
서정주 시인 / 피는 꽃 외 4편 서정주 시인 / 피는 꽃 사발에 냉수도 부셔버리고 빈 그릇만 남겨요. 아주 엷은 구름하고도 이별해 버려요. 햇볕에 새붉은 꽃 피어나지만 이것은 그저 한낱 당신 눈의 그늘일 뿐, 두 번짼가 세 번째로 접히는 그늘일 뿐, 당신 눈의 작디 작은 그늘일 뿐이어니……. 동천, 민중서관, 1968 서정.. 2020. 2. 27.
김상옥 시인 / 사향(思鄕) 외 2편 김상옥 시인 / 사향(思鄕)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 길이, 개울물 돌돌돌 깊섶으로 흘러가고, 백양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 2020. 2. 26.
서정주 시인 / 춘궁(春窮) 외 4편 서정주 시인 / 춘궁(春窮) 보름을 굶은 아이가 산 한 개로 낯을 가리고 바위에 앉아서 너무 높은 나무의 꽃을 밥상을 받은 듯 보고 웃으면, 보름을 더 굶은 아이는 산 두 개로 낯을 가리고 그 소식을 구름 끝 바람에서 겸상한 양 듣고 웃고, 또 보름을 더 굶은 아이는 산 세 개로 낯을 가리고.. 2020.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