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과 시(근대)937 신석정 시인 / 전아사 신석정 시인 / 전아사 포옹(抱擁)할 꽃 한 송이 없는 세월을 얼룩진 역사(歷史)의 찢긴 자락에 매달려 그대로 소스라쳐 통곡하기에는 머언 먼 가슴 아래 깊은 계단(階段)에 도사린 나의 젊음이 스스러워 멈춰 선다. 좌표(座標) 없는 대낮이 밤보다 어둔 속을 어디서 음악(音樂) 같은 가녀린 .. 2019. 10. 5. 김소월 시인 /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외 4편 김소월 시인 / 눈물이 쉬루르 흘러납니다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당신이 하도 못 잊게 그리워서 그리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잊히지도 않는 그 사람은 아주나 내버린 것이 아닌데도, 눈물이 수르르 흘러납니다. 가뜩이나 설운 맘이 떠나지 못할 운(運)에 떠난 것도 같아서 생각하.. 2019. 10. 4. 오장환 시인 / 산협(山峽)의 노래 외 3편 오장환 시인 / 산협(山峽)의 노래 이 추운 겨울 이리떼는 어디로 몰려다니랴. 첩첩이 눈 쌓인 골짜기에 재목을 싣고 가는 화물차의 철로가 있고 언덕 위 파수막에는 눈 어둔 역원이 저녁마다 램프의 심지를 갈고. 포근히 눈은 날리어 포근히 눈은 내리고 쌓이어 날마다 침울해지는 수림(樹.. 2019. 10. 4. 이병기 시인 / 저무는 가을 외 1편 이병기 시인 / 저무는 가을 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움직이네 벼이삭 수수이삭 으슬으슬 속살이고 밭머리 해 그림자도 바쁜 듯이 가누나 무 배추 밭머리에 바구니 던져 두고 젖먹는 어린아이 안고 앉은 어미 마음 늦가을 저문 날에도 바쁜 줄을 모르네 <가람시조집, 문장사, 1939> .. 2019. 10. 4. 김소월 시인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외 4편 김소월 시인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 올라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 2019. 10. 3. 윤곤강 시인 / 찬 달밤에 윤곤강 시인 / 찬 달밤에 달하 노피곰 도드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정읍사(井邑詞)에서 찬 달 그림자 밟고 발길 가벼이 옛 성터 우헤 나와 그림자 짝지어 서면 괼 이도 믤 이도 없은 몸하! 누리는 저승보다도 다시 멀고 시름은 꿈처럼 덧없어라 어둠과 손잡은 세월은 주린 내 넋을 .. 2019. 10. 3. 정지용 시인 / 국수 외 3편 정지용 시인 /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 2019. 10. 3. 김소월 시인 / 꿈길 외 3편 김소월 시인 / 꿈길 물구슬의 봄 새벽 아득한 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 불긋한 잎 위의 길 실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밤 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 흔들리는 다리 위 무지개 길 바람조차 가을 봄 거츠는 꿈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 2019. 10. 2. 이용악 시인 /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시인 / 전라도 가시내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 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네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젠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 2019. 10. 2. 정지용 시인 / 정주성(定州城) 외 3편 정지용 시인 / 정주성(定州城) 산(山)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려 조을던 무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 2019. 10. 2. 김소월 시인 / 금(金)잔디 외 5편 김소월 시인 / 금(金)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진달래꽃, 매문사, 1924 김소월 시인 / 기억(記憶) 달 아래 스ㅣ멋없이 섰던 그 여자, 서 .. 2019. 10. 1. 백석 시인 / 나와 지렝이 외 5편 백석 시인 / 산숙(山宿)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모밀가루포대가 그듣가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들을 베여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 2019. 10. 1. 이전 1 ··· 41 42 43 44 45 46 47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