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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15159

이원 시인 / 과일, 병, 칼이 있는 정물* 외 1편 이원 시인 / 과일, 병, 칼이 있는 정물* 사각 탁자에 초록색 병이 하나 놓였다 병 속에 담긴 시간은 파릇파릇한 초록색이었지만 소리는 모두 삭제 되었다 병의 왼쪽으로 붉은 사과 여섯 개와 노란 레몬이 두 개 놓였다 그들의 시작이었다고 꼭지가 떨어진 곳이 위를 향했다 병의 그림자는 .. 2019. 8. 1.
이흔복 시인 / 江南春 외 1편 이흔복 시인 / 江南春 산에 산에 두견 너는 어이 멀리를 우짖는다. 너는 어이 가까이를 우짖는다. 달 가운데 심어진 계수나무 그늘도 짙을러니 내 후생하여 너를 엿듣는 봄은 그렇게도 화안히 유난할 터, 경탄스럽다. 일찍이 내가 먼 곳을 떠돈 것이 내가 나를 맴돎이었으니, 미쳐 떠돎이 .. 2019. 8. 1.
배옥주 시인 / 사바나에서 블랙커피를 외 1편 배옥주 시인 / 사바나에서 블랙커피를 카페 사바나에 앉아 가젤의 눈빛을 읽는다 수사자가 되어 툭툭 바람의 발자국을 털어낸다 바위비단뱀의 혓바닥 같은 찻잔 위로 검은 유목민들이 떠다니고 소용돌이로 끓어오르는 암갈색 눈알들 야자나무 그늘이 내려오는 창가로 말굽 먼지를 일으.. 2019. 8. 1.
장대송 시인 / 초분 (草墳) 외 1편 장대송 시인 / 초분 (草墳) 화랭이가 안내한 바닷길 구만리 살은 볏짚으로 덮고 뼈는 갈매기 둥지에 품고 살아가리 남도 바람에 세간일 듣고 관고개 넘나드는 까마귀등에서 날 보내다가 낡은 어선으로 어망질하여 한 삼 년 살다보면 조금 서운해도 품은 뼈에선 극락조가 날으리라 팔목의 .. 2019. 8. 1.
김관용 시인 / 다온의 침로(針路) 김관용 시인 / 다온의 침로(針路) 바늘이 누워있네 방향이 쌓여있네 거대한 구조물일수록 용무가 많았고 날이 갈수록 북쪽이었네 외계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네 모래땅은 산모 같아서 일찌감치 달의 뱃속에서 나를 지웠네 바람의 리액션에 화들짝 놀랐네 그러나 진지했네 취한 아랫배를 .. 2019. 8. 1.
문정영 시인 / 얼음 문정영 시인 / 얼음 겨울을 들고 서 있는 내게 흐르는 어떤 소리도 들을 수가 없어, 네가 물었을 때 물의 가방 열어 보일 수 없었어 나는 지금 숨소리야 차가움이야 한때의 속삭임이야 나는 이제 속도가 없어 너의 등이 차가워졌을 때, 나는 불투명한 세상을 그 가방에 넣었지, 그 후로 꺼.. 2019. 8. 1.
임승환 시인 / 복제술 임승환 시인 / 복제술 복제가 가능한 여인을 그린 ‘사반느’란 소설을 읽다가 네이버 검색창에 ‘임승환’을 찍네. 인터넷 세상은 나도 모르는 나를 복제중이네. 286명, 어쩜 조금 더 넘는 수의 사반느가 원본의 사반느를 흔드네. 독립이 독자가 되고 사랑이 사심이 되어 근본을 알 수 없.. 2019. 8. 1.
박소영 시인 / 수그리고 본 하늘 박소영 시인 / 수그리고 본 하늘 고개 숙이고 침 한 번 삼키면 되는 만병통치약 있었는데 내성이 생겼는지 이제는 효과가 없다. 태산 같은 몸을 보이지도 않는 마음이 부려서 얻은 병. 숨 쉴 수 없어서 처방 받은 약. 수그리고 먹을 수 없어 고개 뒤로 젖혀 하늘을 보고 삼킨다. 바닷새 갈매.. 2019. 8. 1.
김민서 시인 / 반달의 시간 김민서 시인 / 반달의 시간 애지의 손톱 밑에 봉선화 꽃씨를 심어놓았지. 욱신욱신 생인손을 앓으면서 꽃의 인연 피어날 것 같아 불길해서 좋았지. 하늘수박넝쿨 향기의 울타리를 치면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꽃물. 하얀 눈썹 달 아래 앉아 손톱 끝으로 자라난 붉은 계절을 자른다. 붉은 반.. 2019. 8. 1.
김이듬 시인 / 문학적인 선언문 외 1편 김이듬 시인 / 문학적인 선언문 '사랑스러워'를 '사랑해'로 고쳐 말하라고 소리 질렀다 밥 먹다가 그는 떠났다 사랑스러운 거나 사랑하는 거나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나 죽은 친구를 묻기 전에 민첩하게 그 슬픔과 분노를 시로 쓰던 친구의 친구를 본 적 있다 그 정신에 립스틱을 바르고 난.. 2019. 7. 31.
이이체 시인 / 유언연습 외 1편 이이체 시인 / 유언연습 두 노예의 사랑은 이렇게 전승된다. 벽화에도 그려질 수 없던 원죄의 실패한 연애담. 죽은 나무 속을 개들이 핥는 숲이었다. 따스한 햇볕조차 막연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자꾸 헛발을 내디뎌 비척거리면서 그들의 피부를 옅게 데워주었다. 그들은 보랏빛으로 퇴폐.. 2019. 7. 31.
유승도 시인 / 나의 새 외 1편 유승도 시인 / 나의 새 내가 인간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아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 2019. 7. 31.